[CEO&Story]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대표

"0점짜리 아빠지만… 임플란트 산업 종주국 행보에 뿌듯"
잘나가던 병원·사업 뿌리치고 '가시밭길' 자처
교육센터 운영등 국내 임플란트 대중화 이끌어
"사업은 내운명… 슈퍼맨 같은 체력 갖고 싶어요"



지난 2000년 경기도 광명의 한 치과병원. 당시 치아가 손실된 환자에게 브리지 시술을 한창 진행하던 최규옥(51) 오스템임플란트 대표는 시술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브리지 시술은 손실된 치아와 정상치아를 연결해주는 보형물을 덧씌워 손실된 치아를 대체하는 치과병원의 일반적 시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최 대표는 브리지 시술 특성상 손실된 치아 주변의 정상치아를 깎아내야 하는 '삭제' 작업을 할 때마다 고민에 빠지곤 했다. 브리지 시술을 위해 정상치아를 삭제해야 할 경우 정상치아도 손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최 대표는 정상치아를 최대한 덜 깎아낼 방법은 없는지 조심조심 환자를 다루는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외환위기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국내 최초의 임플란트 제조업체 수민종합치재로부터 인수제의가 들어온 것. 최 대표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수민종합치재의 부채를 포함해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인 70억여원에 회사를 인수,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오늘날 국내 임플란트 시장 점유율 1위, 아태 지역 1위, 전세계 시장 7위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1,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오스템임플란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최 대표는 "임플란트 시술은 정상치아를 손상시키지 않고 손실된 치아를 영구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머지않아 임플란트 시술이 브리지 시술이나 틀니보다 각광받을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최 대표는 이미 1997년부터 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에 뛰어든 상태였다. 안정적 고수익이 보장되는 여건을 굳이 뿌리치고 '가시밭길'을 걷기로 한 그의 선택은 식구들에게조차 환영 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사업을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는 최 대표는 "문득 돌아보니 이 지점까지 와 있었다"고 말한다. 언뜻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지만 최 대표의 평소 성격을 아는 이들은 쉽게 수긍이 간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며 최 대표는 환자진료ㆍ보험청구ㆍ치과경영ㆍ영상관리 등 업무처리 단계별로 분절돼 있는 치과용 소프트웨어 사용에 큰 불편을 느꼈다. 보통 '언젠가는 개선된 소프트웨어가 출시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적극적이고 성격 급한 그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최 대표는 직접 주변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불러 모아 치과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모든 업무처리 과정을 단 두 번의 과정으로 간소화한 솔루션인 '두번에'다. 당시 뛰어난 제품이었음에도 최 대표의 사업은 한창 인적ㆍ물적 자원이 투입될 초기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적지 않은 부침을 겪어야 했다. 최 대표는 "시중 금융권에서 대출을 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개인병원을 처분하고 사재를 털어넣어도 다달이 돌아오는 직원들 월급날이 가장 두려웠다"고 회상한다. "사업 때려치우고 병원 일에만 전념하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지만 사업을 하며 느끼는 보람은 그를 계속 사업가의 자리에 묶어뒀다. 최 대표는 "진료를 하며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의 숫자는 제한적이지만 좋은 임플란트 제품을 개발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임플란트 사업을 시작하며 2001년부터 AIC교육센터 운영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대표는 사업 초기의 자금난을 감수하면서도 국내 치과의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며 국산 임플란트 보급 및 대중화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마다 1,000여명의 수료생들을 배출하는 오스템임플란트의 AIC교육센터는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임플란트 시술률 70%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수익성보다는 국내 의료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공헌 차원에서 교육센터를 운영하다 보니 현재도 매년 30억원의 비용이 고스란히 교육센터에 투입된다. 최 대표는 "국내의 경우 임플란트 시술 가능 의사가 전체의 80%에 달하는 반면 선진국인 미국ㆍ일본 및 서유럽은 20~3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전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에 따라 임플란트 시장도 급팽창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이 임플란트 종주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양을 이미 갖춘 셈"이라고 강조했다. 한때는 치과의사에서 지금은 '잘 나가는'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로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최 대표에게도 최근 고민 하나가 생겼다. 바로 '슈퍼맨 못지 않은 체력'을 갖는 것이다. 그는 "이제야 사업이 뭔지 조금 알 것 같고 아직 해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며 "20대 못지 않은 체력만 있다면 잠자는 시간을 더 줄이고 남들보다 더 많이 현장을 뛰어다닐 수 있을 텐데 하는 욕심이 자꾸 생긴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그의 모습을 보면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보다는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현장을 누비는 사업가의 모습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욕심 많은 사업가인 최 대표의 꿈은 오스템임플란트를 전세계 임플란트 산업의 메카로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 대표는 2006년 전세계 12곳에 설립한 현지법인에 이어 내년까지 신규 13곳을 추가해 모두 25개의 현지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그는 "집에서는 빵점짜리 아빠이자 빵점짜리 남편이지만 한국이 전세계 임플란트 산업의 종주국으로 거듭나도록 기여한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남들은 쉽게 편한 길을 가지 않는 나를 보고 괴짜라고 하지만 사업은 정말 운명인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이가 들어 거동할 수 없는 날까지 사업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최 대표의 얘기도 그리 허튼 생각이 아닐 듯싶다.
●최규옥 대표는
▦1960년 충남 천안 ▦1991년 서울대 치의학과 ▦1996년 단국대 치의학석사 ▦1997년 오스템임플란트 대표이사 ▦2001년 건강한세상 앞선치과병원장 ▦2006년 고려대 임상치의학대학원 외래교수 ▦2007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09년 벤처기업협회 바이오의료협의회장 ▦2010년 고려대 의학박사
■ 오스템임플란트 성장동력은

국내 첫 3D시술 소프트웨어·잇몸뼈 생성 돕는 'PEP7' 등
"차별화된 기술력 앞세워 '세계 1위' 도약"
최규옥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꿈꿔온 '세계 최고의 임플란트 기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보다 차별화된 기술, 환자의 편의를 고려한 제품 개발 등 신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최 대표가 요즘 가장 정성을 쏟는 것은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3D임플란트 시술 소프트웨어인 '오스템가이드'다. 이 제품은 시술환자의 CT를 3D로 구현해 치과의사가 효과적으로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시술경험이 적은 치과의사도 오스템가이드를 이용하면 시술 실패율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오스템임플란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PEP7'은 최 대표가 오스템임플란트의 성장을 견인한 '신무기'로 내세우는 물질이다. PEP7은 뼈가 생성되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단백질 물질이다. PEP7이 상용화되면 임플란트 시술시 잇몸뼈가 부족해 시술이 어려웠던 환자도 뼈이식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 편리하게 수술이 가능하다. 최 대표는 "PEP7의 경우 유통이나 비용 측면에서 기존에 개발된 유사단백질 물질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제품화 단계에 이르면 수요가 확대되고 외과 등 메디컬 전반에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PEP7은 지난해 특허등록을 마쳤으며 올해 전임상 단계를 거쳐 오는 2014년께 제품화 단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오스템임플란트는 임플란트 관련 세계 최고 기술로 꼽히는 특수표면처리(SLA, HA) 적용 제품을 올해 연이어 선보였다. 특히 연내 출시될 후속 코팅 제품(Bio-SA)은 오스템임플란트만의 독창적인 표면처리 기법이 적용될 것으로 보여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최 대표는 "올해는 오스템임플란트가 기술적 측면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에 도달하는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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