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만 15조 '유례없는 베팅'… 인텔 넘어 글로벌 톱 간다

■ '삼성의 새도전' 평택 반도체단지 착공
기술·생산력 업그레이드… 경쟁사와 격차 더 벌어질듯
이르면 내년말 생산계획 확정… D램·낸드플래시 유력

박근혜(가운데) 대통령과 이재용(왼쪽 다섯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주요 인사들과 기공 발파 버튼을 누르고 있다. 로웬 첸(왼쪽부터) 퀄컴사 전무,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 원유철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 부회장, 박 대통령,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유의동 의원, 공재광 평택시장,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평택=연합뉴스


삼성전자는 7일 평택 반도체 단지 기공식의 공식 슬로건으로 '오늘 여기, 미래를 심다(The Future Starts Here)'를 내세웠다. 삼성전자 경쟁력의 근간인 반도체 사업 투자를 회사의 미래에 빗대며 이번 라인 증설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평택 단지에 1단계 투자하기로 한 15조6,000억원은 단일 반도체 생산 라인으로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 반도체·부품(DS) 부문은 이날 행사를 위해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기공식의 상징인 슬로건 선정에 공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공식에서 "40년 전 기술 불모지에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각이 많았지만 지난 1983년 메모리반도체 사업 시작 이후 10년 만에 세계 1위 자리에 올라 정상을 2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며 "기흥·화성·평택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클러스터로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다시 한 번 도약하자"고 말했다.

◇반도체 세계 1위 굳힌다=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부동의 정상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2012년 화성 17라인 증설에 이어 3년 만에 15조원이 넘는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경쟁 업체와의 기술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의 최대 액정표시장치(LCD) 업체인 BOE가 메모리반도체 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오는 2020년까지 삼성을 따라잡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이번 선제 투자로 진입문턱을 한층 더 높였다는 것이 반도체 업계의 분석이다.

삼성은 최근 14나노 핀펫(FinFET)과 3D V낸드 트리플레벨셀(TLC) 제품 등을 잇따라 개발하면서 반도체 미세공정에서 경쟁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메모리반도체 기판의 회로폭을 좁히거나 아예 위로 쌓는 신기술을 뜻하는 것으로 작업의 효율은 높이면서도 전력은 덜 소모해 경쟁사 제품들에 비해 비교우위를 점하게 된다.

기술 수준이 뒤처진 것으로 지적됐던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도 삼성의 약진은 이어지고 있다. 자사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S6와 갤럭시S6 엣지 등에 자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를 전량 탑재해 오랜 숙원이던 '탈(脫)퀄컴'을 이뤘다. AP는 스마트폰의 두뇌로 통하는 핵심 부품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스마트폰 최대 경쟁사인 애플의 아이폰 차기 모델에 AP 공급계약을 맺은 것으로 파악돼 삼성과 애플이 오랜 갈등관계에서 벗어나 '경쟁적 협력'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쟁력 강화에 따라 사내에서 DS 부문의 입지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올 1·4분기 DS 부문에서 3조3,9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IT·모바일(IM) 부문과 함께 실적개선을 쌍끌이한 바 있다.

◇D램 메모리반도체 생산 유력=삼성이 평택 라인에서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도 관심이다. 평택 라인이 세계 최대·최첨단을 자랑하는 단지인 만큼 이곳에서 생산될 제품에 따라 세계 시장이 재편되는 효과마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공식적으로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이 독보적 지위를 자랑하는 메모리 제품 생산이 유력해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평택 단지의 생산계획은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산업은 시황이 변덕스러워 건물을 짓고 공정설비를 들여놓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적합한 생산품목에 대한 판단이 선다는 얘기다.

가장 유력한 생산제품은 D램·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반도체다. 이민희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로서는 파운드리(수탁생산)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는 아직 설비규모도 충분한데다 불확실성도 커 증설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면서 "평택은 이 회사의 최고 강점인 메모리, 그중에서도 차세대 제품의 생산기지가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장차 대세가 될 3차원(3D) 수직적층 낸드(V낸드)와 20나노 이하 D램은 물론 P램·R램처럼 D램 이후에 등장할 신제품이 평택 기지의 주요 생산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그동안 경영여건의 변동에 따라 반도체 생산을 유연하게 조절해온 전력을 들어 생산품목을 단정 짓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성 17라인만 해도 원래 시스템반도체 전용이었지만 D램 수요가 크게 늘면서 1단계는 D램, 2단계는 비메모리로 바꿨다"면서 "평택 역시 생산계획이 확정된 뒤에도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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