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발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자 미국과 유럽이 달러 환율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일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약 달러에 대해 우려의 메시지를 던지자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총재가 즉각 금리인상 발언으로 맞받아 친 데 이어 9일(현지시간) 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나섰다. 이에 따라 오는 14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담에서는 유례없이 치열한 환율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이날 CNBC 방송에 출연, “약 달러를 경계하고 있다”며 “달러 가치 하락을 모든 정책 대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외환시장 개입이나 그 이상의 정책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재무장관의 입에서 시장 개입(intervention)이라는 용어를 쓰기는 이례적이며, 그만큼 강도 높게 달러강세를 지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FRB 2인자 격인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연방은행 총재는 “어떤 정부나 중앙은행도 자국 화폐가치 변동에 눈감고 있을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월가에 달러 강세 배팅을 주문했다. 재무부ㆍFRB 수뇌부의 이날 발언이 사전에 조율 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소피아 드로소스 모건스탠리 외환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이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환율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순방을 앞둔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강 달러는 미국의 이익과 부합하며, 미국의 이익은 곧 세계의 이익”이라며 거들었다. 미 주요 인사들의 연쇄 발언으로 이날 뉴욕외환 시장에서 달러화가 초강세로 돌변했다. 달러가치는 유로화에 대해 0.9% 오른 1.5634 달러, 엔화에 대해서는 1.2% 오른 106.22엔을 기록했다. 미국의 강달러 발언이 쏟아지자 트리셰 ECB 총재는 “FRB의 발언을 예의 주시하겠다”면서 “다음달에 기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맞받아쳤다. 앞서 루카스 파파데모스 ECB부총재도 “유로 존 물가 안정에 통화정책의 최우선 두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이 환율을 둘러싸고 치열한 설전을 펼치는 것은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계점을 넘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되고 있다. ECB가 이르면 다음달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국은 초비상이 걸렸다. 당장 금리를 인상할 여력이 없는 미국으로서는 ECB의 금리 인상은 달러 가치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의 고유가고통은 더 커진다. 고유가 문제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경기침체와 더불어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는 게 미국의 정치 지형이다. 그러나 미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할지에 대해서는 회의론도 나온다. 지난 2001년 부시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시장 개입은 단 한차례도 없었고, 인위적인 환율 조작은 유럽과의 마찰을 야기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카드를 갖고 있다’는 경고 정도에 그치고, 유로 당 1.6달러 대를 넘어서지 않는 한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G7 재무장관 회담 즈음 달러가치는 유로당 1.5983달러까지 떨어진 바 있어 아직까지 미국이 인내할 여유가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