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 국경지대 조선인들을 내지로 추방한다.’ 1937년 8월21일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문(지령 N-1428-326)의 골자다. 명분은 간첩행위 차단.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 용모가 비슷한 일본인들의 스파이 활동을 원천 봉쇄한다는 것이었다. 연해주 일대에 뿌리내린 한인공동체에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강제이주가 시작된 9월 중순 이전에 지식인 2,800여명이 남몰래 처형된 데 이어 한인 17만1,781명 전원이 4,000~6,000㎞ 떨어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쫓겨났다. 바람도 막을 수 없는 화차와 가축열차에서 40여일을 보내는 동안 어린이들의 60%가 얼어죽고 굶어죽었다. 도착한 중앙아시아의 동토에 땅굴을 파거나 움막을 세우고 겨울을 난 한인들은 굶어죽으면서도 간직했던 씨앗을 뿌려 허허벌판의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어냈다. 옛 소련의 ‘노력영웅’ 1,200여명 중 750여명이 ‘고려인’으로 불린 이들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다시금 유랑하고 있다. 각 공화국에 민족주의 바람이 일면서 배척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도 러시아어와 공화국언어ㆍ민족어를 익혀야 하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3ㆍ4세대에서 한국어는 거의 사라져가는 형편이다. 항일 독립군을 키우고 먹이며 무기 살 돈을 대줬던 고려인들에게 조국은 무엇을 주었을까. 독일이나 그리스ㆍ이스라엘 같은 민족귀환 프로그램은커녕 국가 차원의 지원책도 없다. 조국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55만 고려인들은 여전히 민족의 보배다. 고려인 네트워크 덕분이다. 자원의 보고로 떠오르는 중앙아시아에 보다 용이하게 진출할 수 있고 연해주의 식량기지화도 가능하다. ‘고려인’이라는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민족의 아픔이고 영광이며 채무이자 미래를 위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