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모이는 설 연휴를 앞두고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1호 정책쇄신안을 발표했다. 하나하나가 관심이지만 그 중에서 서민의 표심을 건드리는 것은 전세자금 저리대출 지원안이다.
연소득 4,500만원 이하 가구가 2금융권에서 높은 금리로 대출한 전세자금을 1금융권인 은행대출로 바꿔 대출금리를 평균 14%에서 7%로 낮춰주겠다고 한다. 대상은 100만가구에 달하고 총지원액은 가구당 평균 2,000만원으로 상정할 경우 20조원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쇄신안을 내놓는 자리에서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드리는 것이야말로 정책쇄신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쇄신안이 중산서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우리는 아무런 의심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한달 전 정부 발표내용을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말 발표한 신년 업무계획 자료를 보면 이건 또 뭔가 하는 의아심과 함께 혼란이 온다. 그 업무계획에 한나라당 비대위가 이번에 발표한 쇄신안의 오리지널이 담겨 있다. 당시 금융위 안에서 지원 대상은 소득 3,000만원 이하였다.
그랬던 것이 비대위 정책쇄신안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면서 지원 대상이 몇 십 배로 늘어났다. 연소득 3,000만원 이하였던 것이 4,500만원으로 확대돼 대상 가구가 2만5,000에서 100만으로 40배 늘었다. 총지원 규모도 5,000억원에서 20조원으로 증가한다.
지난 한달 새 무슨 경천동지할 경제사회적 변화가 있었는지, 기준액을 그렇게 높여 잡은 구체적 준거는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원안을 냈던 금융위와 지원보증 역할을 해야 하는 주택금융공사는 황당해한다. 지원규모가 40배로 늘었으니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자빠질 지경이다.
정부 부처에서 한참 세부시행안 작업을 하던 정책안을 집권여당이 막무가내로 가져다 뻥튀기해 이른바 1호 쇄신안이라고 국민에게 발표한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기존 정부안에다 곱하기 수십배를 해서 부풀린 것이 소위 '쇄신'이다.
기존 정부안 가운데 필요한 것은 집권당도 원용할 수 있다. 비대위가 절치부심해서 여러 쇄신안을 내놓았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1호 쇄신안 같은 것은 명절용 공약선물세트 내놓듯이 해서는 안 된다. 집권여당이면 최소한 당정협의 절차라도 거치는 것이 의무이다. 집권여당의 공약은 내용 못지 않게 절차와 과정의 정당성이 전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