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사를 기획했던 것은 지난 2월 이었습니다. 헤이리에 있는 금산미술관에 들렀다가 박은선 작가의 ‘충성’을 보게 된 것이 발단이 됐습니다 뚝배기 안에 뻘건 국물, 콩나물 가닥 옆에서 거수경례를 붙이고 있는 치와와는 차라리 엽기적 이었습니다. 금산미술관의 이혜정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쩌면 이런 작품이 기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맴돌았습니다. 그 이후로 자꾸 문화면 ‘전시’단신란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직장이 인사동 근처라 발품도 좀 팔았습니다. 하지만 미술기자를 해 본적이 없는 저로서는 어떤 작품들을 골라서, 어떤 공통분모를 끌어내고, 또 그걸 어떻게 엮어 써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4월 북촌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삼인행’(三人行)을 봤습니다. 그 곳에서 이번 기사의 한 축을 이루는 구본주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사의 공통 분모는 ‘풍자’였습니다. 하지만 구본주의 작품들은 저에게 ‘너는 내가 풍자로 보이니?’라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무식한 기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임근혜 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를 찾았습니다. 3월쯤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을 한 적이 있던 터라 임연구사는 “의논은 오래 전에 하더니 아직도 기사를 안썼냐?”고 저를 구박했습니다. 임연구사는 그러면서도 김재홍, 황순일, 송영규 작가를 소개해 줬습니다. 저는 이들 다섯 작가가 공유하는 공통 분모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임연구사는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트라우마를 ‘시대의 상처와 아픔’으로 고쳐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작가의 생각이나 철학을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은 “작품을 만든 것은 나의 몫이지만, 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자인 저는 ‘사실을 알기 쉽고,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네 명의 작가를 모두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었습니다. 또 고인이 된 구본주 작가의 미망인 전미영씨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구본주 안에 들어갔다 온 것 처럼 남편의 작품에 대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작가의 생각을 낱낱이 드러낸 이 기사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상상력을 폄훼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도 ‘독자들도 한 번쯤은 작가의 생각과 철학, 작품을 만든 배경을 알고 감상하면 미술과 더욱 친숙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저의 독선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