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독립협회의 우국지사는 물론 이토 히로부미까지 이곳에서 편하게 지냈다. 이곳이란 한성의 '손탁빈관(孫鐸賓館)'. 독일 여성 손탁(Antoniette Sontag, 1854~1925)이 운영한 호텔이다. 벽안의 여성이 호텔을 경영하게 된 배경은 고종의 각별한 신임.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형으로 조선 땅을 밟은 손탁은 뛰어난 요리솜씨와 화술로 궁내부 관원직을 꿰찼다. 손탁은 찬모(饌母)보다 참모(參謀)였다. 명성황후도 서양 소식을 들려주고 화장술까지 소개하는 손탁을 총애했다. 고종은 손탁에게 정동의 방 5개짜리 한옥(토지 1,184평)까지 내려줬다. 내부를 서양식으로 고친 손탁의 집은 곧 한성외교가의 사교장으로 바뀌었다. 명성황후를 잃고 불안해하던 고종이 거처를 러시아대사관으로 옮긴 아관파천에도 손탁이 간여했다는 주장이 있다. 환궁한 고종은 손탁에게 1898년 3월16일자로 '노고에 보답하는 뜻(以表其勞事)'이 담긴 '양관하사증서'를 내리고 1902년에는 서양식 벽돌건물도 지어줬다. 한성 최초의 근대식 호텔인 손탁빈관은 사무실이 없던 독립협회 지도자들도 애용했다. 손탁은 한일병탄 이후 한국을 떠났다. 손탁은 망해가는 조선을 위해 헌신한 사마리아인이었을까. 글쎄다. 단골고객 중에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재정을 말아먹은 탁지부 고문 메가티는 손탁호텔에서 황실의 돈으로 마음껏 마시고 먹었다. 이토가 투숙하며 조선 대신들을 불러내 회유, 협박한 장소도 손탁호텔이다. 고종의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분쉬의 일기에는 손탁이 계산서를 위조해 많은 돈을 타냈다는 대목도 나온다. 지금은 이화 100주년 기념관이 있는 자리에 터를 잡았던 손탁호텔에는 열강은 물론 일개 찬모에게까지 휘둘렸던 망국의 역사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