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모니엄. 밀턴의 실락원에 나오는 지옥의 수도다. 하루 2조 달러가 오가는 국제금융시장의 외환 거래장을 뉴욕 월가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광속으로 오가는 통화의 전쟁터, 전사(戰士)들의 손놀림 하나로 수천 수만이 대희대비(大喜大悲)한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거꾸로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보는 피 말리는 제로섬 게임이 날마다 펼쳐지는 세계다. 화폐는 5,000여년 전 바빌로니아를 세운 수메르 족에 의해 처음 탄생됐다. 가치 저장수단과 계산단위로서 화폐의 본질적 기능이 확 바뀌기 시작한 건 각국 화폐가 ‘지리적 영토’를 탈출, 이 나라 저 나라 이 대륙 저 대륙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근대 이후다. 초기 수단적 의미의 화폐가 이제는 기하급수적 자기 복제와 증식을 해가며 인류 역사를 흔드는 도깨비 방망이가 돼가고 있다. 화폐 지리학이 말하는 이른바 통화 권력의 재분배가 이뤄지며 국가간 권력까지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화로 인한 전세계적 혼돈을 끝낼 수 있는 묘수가 없을까. 그 일환으로 생각해 낸 게 단일 통화다. 단일 화폐에 대한 논의는 그 동안 간간히 제기돼왔다. 그러나 현실화엔 대부분이 고개를 내젓고 있다. 범세계 중앙은행을 창설하고 국가별로 천차만별인 재정적자와 인플레를 조율하는 일에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세계 기축 통화국의 자리를 확고히 누리고 있는 미국이 이 같은 기득권을 순순히 포기할 리 없다. 또 통화공급 조절을 통한 각국내 경기 조절이 불가능해지는 문제점도 있다.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각국간 통상장벽을 제거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세계통화를 향한 첫걸음의 형태인 유로가 지난 2002년 출범, 난제들 속에도 지금 만큼이라도 통합에 이른 건 그나마 문화 인류적 동질성이 강한 유럽의 특수성 때문이다. 국적을 통합한 단일 통화와는 다소 다른 성격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미래 통화로 거론되는 게 전자화폐다. 전문가들은 달러나 유로 같은 기존 통화가 국제통화로 유통되는 시대는 곧 끝날 것이라며 인터넷을 경유한 전자 화폐의 유통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전자화폐는 형식은 인터넷을 통한 통합 화폐로의 성격을 띄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전자화에 따른 부작용은 어찌 보면 기존화폐보다 더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이 미래의 분야를 준비함에도 선두는 미국이다. 미국의 경우 이제까지 축적된 세계 최고의 금융노하우에다 전자화폐 운용에 불가결한 시스템이나 범죄를 막기 위한 보안 기술을 만드는 데 이미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특히 보안 분야에서 미국에 뒤지지 않을 독자적인 기술을 이미 상당부분 축적한 상태다. 위앤화의 세계화를 꿈꾸는 중국도 선진권에서 훈련 받은 풍부한 IT 인력들을 바탕으로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한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다가올 전자 통화 시대, 또 다른 형태의 글로벌 머니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오만한 미국의 금융패권주의가 미래로 이어지는 상황은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게 미국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위앤화가 위세를 얻어 세계를 눈 아래로 볼 때 중국의 금융 패권주의는 미국보다 되레 한 수 더 뜰 가능성이 충분하다. 어느 나라가 됐든 그 같은 상황을 막아내려면 관련 금융과 IT 기술을 선점, 전자통화시대를 철저히 대비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미래의 화폐마저도 ‘강자의 이익’이 돼 또 다시 지구촌을 흔들어 대는 역사가 반복된다면 펜더모니엄은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 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