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백헌기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영세사업장 안전시스템 구축… 산재 사망률 절반 낮출 것
재해자 10명 중 8명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서 발생
올724억 투입해 중기 안전시설 확충·작업환경 개선 지원
대기업 잇단 사고…안전비용을 '투자'아닌 '손실' 인식 탓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자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근로자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합니다. 더 큰 문제는 최근 10년간 산업재해 통계를 살펴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점유율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들 사업장은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있는데다 작업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백헌기(사진)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지난 2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단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안전보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오는 2020년까지 근로자 1만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비율인 사고사망만인율을 현재 0.7에서 선진국 수준인 0.4 정도로 낮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30년간의 노동운동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해온 그는 먼저 안전보건 약자계층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2011년 7월 공단을 이끌게 된 후에도 안전보건 환경이 열악한 소규모 사업장을 수시로 직접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백 이사장이다. 대담=오철수 사회부장(부국장대우) csoh@sed.co.kr

그의 말처럼 최근 발표된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전체 재해자 수 9만1,824명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수는 7만4,836명(81.5%)에 달한다. 2004년 68.0%이던 전체 재해자 수 중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수 비중은 2005년 이후 70%대로 높아졌고 2010년부터는 80%대까지 올라왔다.

이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세사업장의 산업재해가 줄어야 전체 산업재해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 사고사망만인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백 이사장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공단은 영세사업장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안전시설 확충이나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공단은 올해 총 72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약 7,200곳의 사업장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공단은 법적으로 안전보건 관리자 선임 의무가 없어 재해예방에 취약한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보건 기술 지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현대제철 사고에서 보듯이 영세사업장이 아닌 대기업에서도, 그것도 반복적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안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투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손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투입해야 하는 비용보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후의 처리비용이 더 적게 들어간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겁니다.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커지면 기업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투자를 늘리게 될 것입니다."

백 이사장은 다시 화제를 2013년 산업재해 통계로 옮겨 한국의 산업재해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일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매일 250여명이 부상당하고 5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1년으로 계산하면 9만여명의 재해자가 발생하고 이 가운데 2,000명 가까이 사망하는 셈입니다. 지난해 총 재해자 수는 9만1,824명에 달하고 이 중 1,929명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과 비교하면 전체 재해자 수는 432명이 줄었지만 사망자 수는 오히려 65명 늘어났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한국이 산업재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시점부터의 누적치도 제시했다. 그는 "1964년부터 지난해까지 재해를 입은 근로자 수는 모두 440만명이 넘고 사망자는 8만5,000명 이상"이라며 "비유하자면 지금껏 산업재해로 인해 인천광역시와 대전광역시 전체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 다치고 경기도 과천시 인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백 이사장은 산업재해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지대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재해는 근로자 개인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우리 경제에도 큰 손실을 입힙니다. 산업재해로 인한 직간접적 경제적 손실은 2012년 한 해 동안만 19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조원이라는 손실규모는 연봉 2,000만원을 받는 근로자 90만명을 1년간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고 자동차를 약 140만대 수출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그는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도 막대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 근로손실일수는 2012년 5,400만일이 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는 노사분규에 따른 근로손실일수 93만일의 58배가 넘는 셈입니다. 결국 경제적인 면에서 볼 때 산업재해로 재해자 1명당 2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하고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에서는 평균 30일 정도의 근로손실이 생긴다고 보면 됩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경영철학으로 지난 3년간 공단 이사장으로 현장을 방문하며 피부로 느낀 바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백 이사장은 "고용노동부와 공단이 아무리 열심히 산업재해 예방활동을 펼친다고 해도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안전보건 활동의 가장 중요한 축은 '사업주'와 '근로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의 위험요소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며 "효율적인 산업재해 예방활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사업주·근로자 스스로 자기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챙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사업장 스스로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위험성평가'제도다. 위험성평가제도는 안전보건 조치의무가 있는 사업주가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평가한 뒤 이를 토대로 노사가 협력해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다. 그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위험성평가를 기반으로 자율규제 방식의 재해예방 활동을 펼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2013년부터는 국내 모든 사업장도 이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했지만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이를 시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을 기반으로 공단은 영세사업장의 위험성평가제도 도입을 지원하고 있다. 산재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산재예방요율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사업장이 공단으로부터 위험성평가 인정을 받을 경우 3년 동안 해당 사업장의 산재보험료율은 20% 인하된다.

실제 근로자 수 50인 미만 제조업의 3년간 산재보험료 할인금액을 추산해보면 금속제품 제조업 또는 금속가공업은 약 2,200만원, 건설용 금속제품 제조업은 약 2,100만원, 각종 금속의 용접 또는 용단을 행하는 사업은 약 1,900만원, 동력용 전기기계기구 제조업은 약 1,500만원, 기타 제조업은 약 1,400만원 등으로 예상된다.

'사업주 교육 이수'를 통해 산재보험료를 깎아주는 것 역시 사업장이 자율적인 안전관리를 활성화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업주가 고용부 장관이 실시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자체적으로 산재예방 계획을 수립해 인정을 받을 경우 1년간 10%의 산재보험료율이 내려간다.

공단은 최근 미얀마와 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등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백 이사장은 "공단은 그동안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특히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의 안전 수준 향상을 위해 기술공여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공단은 베트남·몽골 등에 전문가를 파견해 기술을 전수하고 있고 아시아 각국의 전문가를 초청해 연수도 실시하고 있다. 그는 "공단은 글로벌 안전문화를 이끌어가는 리더그룹으로 국제적 위치를 확고히 해나가겠다"며 "이렇게 되면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자 백 이사장은 내부 조직혁신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산업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 해소와 산업 현장의 안전 시스템 정착에 무게를 두고 사업추진 방식을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혁신의 핵심은 '현장성 강화' '적시성 향상' '효과 극대화'입니다. 공단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정부정책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He is …

△1955년 인천 △2008년 숭실대 경영학석사 △2000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 △2005년 한국노총 사무총장 △2005년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2006년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 위원 △2006년 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심의위원회 위원 △2007년 장애인고용촉진위원회 위원 △2008년 근로복지공단 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 △2009년 노동부 고용정책심의회 위원 △2011년~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외국인 근로자 사고 크게 늘어… 입국 전 안전교육 검토"

백헌기 이사장은 인터뷰 도중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외국인 근로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자 이웃입니다.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와 경제활력 유지를 위해 외국 인력제도를 도입한 후 외국인 근로자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 현재 약 55만명이 국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는 대부분 작업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고 언어나 문화적 차이에 따른 어려움으로 안전사고나 직업병의 위험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돼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업재해를 입은 외국인 근로자 수는 약 2만9,000명이며 사망자 수도 500명을 넘고 있다. 지난 2012년 외국인 재해자 수는 6,404명으로 2008년(5,222명)보다 22.6%(1,182명) 늘었다. 구체적으로 최근 5년간 외국인 재해 현황을 분석해보면 사업장 규모별로는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외국인 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그 비중은 무려 80.4%에 달한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국적별로는 방문취업제가 시행된 2008년 이후 한국계 중국인의 재해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발생 형태별로는 끼임과 떨어짐에 의한 재해가 가장 많고 근속기간별로는 6개월 미만 근로자에게서 66.1%가 발생했다.

공단은 현재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단계에서부터 안전보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아울러 일하는 동안에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안전보건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전문강사 양성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을 위해 공단은 외국인 근로자 취업교육을 담당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6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단은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 등 외국인 근로자 취업비중이 높은 업종의 안전보건 매뉴얼 30종을 10개 국어로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또 외국인 근로자의 의사소통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공급하는 한편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용 동영상과 책자·포스터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백 이사장은 "공단은 앞으로 외국인 근로자 안전보건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현행 강의식 취업교육에 실습을 보완해 현장성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외국인 지원센터 등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안전보건 교육 지원도 확대되도록 해 현장에서 실질적인 재해예방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외국인 근로자가 국내에 들어온 후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기 전에 기초안전 보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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