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지원서비스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열악한 국내 은행들의 국제화 수준을 감안하면 분명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발표 자료의 마지막 단에 적혀 있던 한 줄이었다. "다른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 경영실태평가시 감점하겠다"는 것. 쉽게 말해 해외에 나가 '사고'를 쳐서 나중에 나가는 금융회사에까지 폐를 끼치면 벌칙을 부과하겠다는 얘기다.
기자는 눈을 의심했다. 금융회사들의 해외진출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금융감독당국의 아이디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국내 금융계의 국제화 정도를 나타내는 초국적화지수(TNI)는 3.2%다. 글로벌 은행인 HSBC(65%), UBS(77%) 등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국내은행 해외점포는 현지 진출 국내 기업을 지원하거나 현지 교민을 대상으로 한 단순 송금업무에 그치고 있다. 말 그대로 걸음마 수준이다.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이 좀처럼 늘지 않는 것은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글로벌 은행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해외 시장을 넓히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로 금융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현지 정치ㆍ사회ㆍ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인허가 절차도 복잡하다. 무엇보다 '신뢰'가 기본이라 현지인의 믿음을 얻는 데 시간이 걸린다. 현지시장 진출은 이 모든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런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 금감원이 규제 마인드에 사로잡혀 회초리부터 들겠다니,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보신행정이다.
시중은행 중 가장 성공적인 해외진출 사례로 하나금융이 꼽힌다. 하나금융은 지난 1999년부터 매년 책임자급 4~5명을 뽑아 해외 점포에 6개월 순환근무를 시켰다. 해외에서 MBA를 받은 인력의 현지근무를 의무화하기도 했다. 하나금융의 해외 전문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금융은 사람이 한다. 그런 사람을 기르는 데 수십년이 걸린다"는 경영진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민간 금융회사들은 이렇게 혼을 들여 해외 진출의 싹을 틔워 가고 있는데, 감독 기관은 실패에 따른 책임론이 무서워 규제부터 생각하니 우리 금융산업이 여전히 바닥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