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동북아 금융허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외국자본의 한국시장참여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기간에 달성될 수 없으며 정부와 기업이 정해진 시간표를 만들어 계획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한국은 여전히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갈 길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미국의 명문 다트머스대학 터크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강 교수(사진)는 한국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가 필수적이며 최근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자본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시대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주도의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대해서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임기가 끝나는 4년 후에도 북한핵문제는 지금 현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6자 회담 성과에 의문을 표시했다. 미국 학계에서 대표적인 한국 경제와 한반도 정치 전문가로 평가 받고 있는 데이비드 강 교수를 만나 한국 경제의 현실과 문제점, 부시 행정부의 대북관계, 북한 핵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한국 금융당국이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를 제한하고 외국 자본의 한국기업 인수합병을 규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지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하고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이 절실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달성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전개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도 ‘주주’의 개념을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입니다. 이사들은 기업 경영진의 의도대로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정되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행 이사의 국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사들이라면 굳이 국적이 문제될 것 없지 않겠습니까. 외국인들의 한국기업 M&A에 대해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자금, 국부유출 우려 등의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죠. SK와 소버린자산운영의 경영권 분쟁을 지켜보면서 외국자본이 배척되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며 주주들의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주식시장과 기업지배구조에 아직도 문제가 많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리고 이 가운데 20%만이 주식시장에 투자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주식시장의 투명성이 취약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한국 금융시장이 세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볼 수 있죠. -한국은 올해부터 집단소송제를 시행합니다. 미국도 집단소송제로 기업들의 폐해가 많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도 집단소송제의 이해득실을 놓고 논쟁이 뜨겁습니다. 개인들은 권익보호를 위해 집단소송제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고, 기업들은 사소한 소송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대기업의 불공정하고 부정한 행위로부터 개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기업들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영진들에게 부실경영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ㆍ미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지지부진합니다. 언제쯤 타결될 것으로 보십니까. ▲장기적으로 FTA체결은 한국과 미국 양국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 당장 FTA 체결에 나서기 보다는 지적재산권과 스크린쿼터, 농산물시장 등 다른 분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미국 경제 정책 담당자들은 한국과의 순수한 의미에서의 FTA 체결에는 반대하고 있으며 무역불균형과 환율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FTA 협상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간 FTA는 세계경제의 자유무역 흐름에 따라 불가피하지만 지금 당장은 해결이 힘들고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노무현 정부는 국내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데 있어 다른 분야에 비해 관심이 적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전반에 대한 노 대통령의 비전에 대해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대국과의 외교관계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죠. 하지만 문제는 경제입니다. 국내 경제정책을 실행하는데 있어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으며 국가적인 혼란을 초래한 것도 사실입니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정해진 시간표와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핵심 경제정책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하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세계경제의 흐름과는 달리 한국경제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경제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한국경제는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부가 경제정책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기업들이 숨을 죽이고 동면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기에도 바쁘고 금융개혁도 시급한데 모두 한숨만 쉬고 있는 형국이지요. 한국 기업들은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수출이 한국경제를 지탱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수출기업보다 차원이 높은 다국적기업으로 거듭나 세계 초우량 기업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어려운 여정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경제 성장률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2005년 한국정부가 경제성장과 개혁을 위해 어느 분야에 주력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뉴욕 월가(街)의 한국 전문가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시장 개혁과 기업투명성이 우선 입니다. 이와 함께 대학교육의 제도와 시스템을 손질해야 합니다. 이는 올해 뿐 아니라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명심하고 추진해야 할 사항입니다. 지금의 주입식 교육과 대학시스템은 경제가 덜 발달되고 대규모 공장근로자를 양산하는 경제체제에는 적합했지요. 한국 경제가 성숙할수록 독립적인 사고와 기술력, 전문성을 가진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이는 대학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인력을 서비스와 제조업 현장에 투입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사실 한국의 대학교육에 대해서는 학부모는 물론 기업들도 불만이 많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는 양질의 대학과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이 역동적인 지역경제를 만들어 낸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버클리와 UCLA, UC샌디에이고, 스탠포드 등이 캘리포니아의 하이테크 기업과 금융시장에 새로운 인재를 수혈하는 심장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들도 이를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산학연계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학생들이 산업계에 투입되도록 시스템을 바꾸어야 합니다. -화제를 정치쪽으로 돌려볼까요. 북한 김정일 정권에 이상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핵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핵문제의 영향은 이미 동북아시아 금융시장에 반영돼 있고 이를 둘러싼 갈등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봅니다. 북한정권과 핵문제에 있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유지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렇죠. 북한이 붕괴되거나 핵실험 확대 등 한반도 긴장이 확대될 경우에는 한국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할 것입니다. 북한의 평화적인 정권 이양과 점진적인 체제붕괴가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죠. 특히 북한에서 개혁주의자들에게 정권이 넘어가고 이들 신진 세력이 정권 안정을 꾀하면서 세계 경제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이상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6자 회담도 별 성과가 없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미국이 이라크 문제에 매달리고 있는 이상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임기 중에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성과도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이라크 전쟁을 해결해야 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현실에서 북한 핵 이슈에 대한 혁신적인 방안을 내놓기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또 6자 회담에 참여하는 당사국간 이해관계가 다른 것도 6자 회담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미국은 전적으로 핵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은 북한 정권의 불안정과 붕괴 등 관심분야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6자 회담 당사자간 의견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금지된 선을 넘지 않을 경우 미국을 제외한 당사국들은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기 보다는 각자 개별국가의 실리를 챙길 공산이 크다는 점도 6자 회담의 장기 교착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북한정권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얘기도 간간이 들립니다. 김정일 정권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요. ▲미국과 북한의 상호 불신과 반목은 정도를 넘고 있고 치유도 지극히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부시 정권 2기 임기가 끝나는 4년 후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지금 수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경제개혁과 변화가 시작된 만큼 이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며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변화의 숨결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경제 개혁을 경험하게 되는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정권과 지도층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앞으로 북한 정권의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데이비드 강은-한국경제·정치 정통한 대북 포용론자 미국의 명문 다트머스대학 터크경영대학원에서 아시아 비즈니스 및 아시아의 다국적기업 컨설팅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담당 보좌관으로 취임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와 막역한 친구 사이로 한국 경제 뿐 아니라 한반도 정치에 대해서도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 포용론자로 알려져 있다. . 아시아 기업의 미국진출에 대해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 경제와 정치와 관련해 수 많은 정부기관에 조언을 하고 있다. 지난 95년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예일대와 UC샌디에고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일했다. 주요 저서로는 정실자본주의(한국과 베트남에서의 부패와 발전ㆍ2002년), 북한 핵(빅터 차와 공저ㆍ2003년) 등이 있으며 외교정책(Foreign Policy) 및 국제발전, 국제조직, 국제안보 등 세계 굴지의 잡지에 글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