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개발 뗏목 대신 선진 사다리 놓아야


언제부터인지 한국 사회는 각종 현안들이 생겼을 때 문제의 본질보다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 더 요란한 세상이 되지 않았나 우려된다. 정치권이나 여론 주도층들은 각각의 이해 관계에 따라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 지엽적인 문제를 침소봉대해 자극적이고 충동적으로 여론을 끌고 나가곤 한다. 결국 비생산적인 논쟁을 반복하다 문제 해결은 멀어지고 사회 전반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된다.

최근 청와대 대통령실 비서실장 인사만 보더라도 당면한 국정 과제에 적합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본질적인 이슈는 뒷전으로 미룬 채 고령 편향이니, 시대 역행이니 등등 단편적인 논의로만 흐르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박근혜 정부의 당면 국정 과제는 법질서 유지를 통한 안보와 통일기반 확립, 질적 성장을 통한 선진경제 안착, 경제 수준에 맞게 복지ㆍ교육ㆍ문화 등 사회 각 분야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 등 크게 세 가지다. 이번 신임 비서실장 인선을 보면 박 대통령이 가장 우선시하는 분야가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에 대응한 안보와 통일기반 확립임을 읽을 수 있다.

지금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들의 시각은 상당히 냉담한 편이다. 지난해 가을 이후 많은 자금들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면서 다른 이머징 국가들에 비해서도 주가가 장부가치 대비로 볼 때 약 28% 정도 더 떨어져 있다. 이러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은 경제 펀더멘털보다는 북한 리스크에 있다. 체제 붕괴 위험을 안고 있는 북한이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이면서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투자를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필자가 2002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외부감사인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일본이 패망하고 떠났던 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더 열악해 보였다. 경제와 달리 남북 문제는 60~7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질적 도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안보 및 통일 문제, 법질서 유지를 국정의 우선순위로 다루겠다는 의도는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반면 보수적인 시각이 요구되는 안보 문제와 달리 경제ㆍ사회 분야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뗏목을 타고 개발경제(developing economy)라는 강을 건넜으면 이제는 선진경제(developed economy)라는 절벽을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를 놓을 때다. 과거 개발경제 때의 정부 정책과 성공 요인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정권마다 집권 초기에는 강하게 주장하다 결국 흐지부지된 규제 완화도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정책이다. 과거의 패러다임 속에서 만들고 적용된 규제들을 새로운 차원의 경제를 향하고 있는 이 시기에 왜 붙들고 있는가.

또 과거 30년 간 개발경제 속에 정책을 펴왔던 관료들이 어떻게 발상을 전환해 신경제ㆍ신사회를 만들 수 있겠는가.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아직도 행정조직에 곳곳에 만연해 있는 개발 시대의 뗏목을 거두고 선진경제의 사다리를 놓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시각으로 앞을 내다보며 미래 경제와 사회 변화를 위한 참신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요컨대 안보 문제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다루되 경제와 사회 분야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변화를 불어넣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보수와 변화의 시각은 각 과제별로 적절히 적용돼야 한다. 하나의 시각만을 고집해 모든 사안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려는 데서 비생산적 논쟁이 일어난다.

내부 투쟁에 소모되는 에너지 낭비를 줄여야 사회 전반의 힘이 생기고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안보와 법질서를 잘 잡아 앞으로 5년 내 올 수도 있는 한반도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체제를 갖추고 경제와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려 선진국으로 오를 사다리를 놓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