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 동일제품 인식 여부 '짝퉁 판정의 기준'

상표권 침해 소송 1년새 13% 늘어… 법원, 판결잣대 제시


최근 상표를 둘러싼 기업간 분쟁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법원의 판단 잣대는 사안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하다. 구매자, 즉 소비자들이 동일 제품으로 인식할 여지가 있는 지를 ‘짝퉁’판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 이는 급증하고 있는 상표 소송의 결과를 예상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상표권 소송은 391건으로 전년(348건)보다 약 13%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추세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은 옥시사가 피죤사를 상대로 낸 상표권 소송에서 옥시의 손을 들어줬다. 옥시는 지난 2003년 10월 ‘O2액션’이라는 상표로 분말형 산소계 표백제 제품을 출시해 시장을 장악했으나 피죤이 지난해 3월 ‘매직O2’라는 유사제품을 내놓은 뒤 매출이 급감했다. 재판부는 “‘매직’은 흔한 수식어에 불과하므로 피고의 상표 중 소비자 주의를 끄는 부분은 ‘O2’로 원고 상표 ‘액션O2’에서 주의를 끄는 ‘O2’와 호칭과 관념, 외관 면에서 동일하므로 두 상표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말에도 국내 제과업계의 양대 산맥인 롯데제과와 해태제과가 ‘석류미인’을 두고 벌인 싸움에서 법원은 같은 이유로 롯데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롯데는 지난해 5월 ‘롯데, 석류미인’이라는 상표를 등록했으나 해태가 ‘석류美人’ 껌을 먼저 시중에 내놓자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해태측은 ‘석류’와 ‘미인’은 모두 보통명사로 특정회사가 독점할 수 없는 상표라는 논리로 맞섰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석류와 美人은 그 자체로는 식별력이 없지만 두 단어가 결합된 ‘석류美人’은 식별력을 가져 롯데제과의 상표권이 침해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두 회사 상표는 모두 ‘석류미인’으로 불릴 수 있어 소비자들이 볼 때 그 호칭과 관념이 동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7월 대법원이 모 건설회사의 아파트 브랜드명인 ‘e-OO세상’을 떠오르게 하는 ‘e-OO병원’에 대해 상표 등록 불가라고 최종 결정을 내린 배경도 비슷하다. 대법원 3부는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박모씨가 특허청을 상대로 낸 서비스표(서비스업종의 상표) 등록거절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병원 이름에 전자나 인터넷을 뜻하는 ‘e(electronics)-’를 쓰면 병원업의 본래 의미를 벗어나 화상진료서비스업 또는 건강상담업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e-’ 부분은 전자(電子)ㆍ인터넷 등을 뜻하는 영어단어로 실생활에서도 그와 같은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며 “병원명에 이를 사용할 경우 ‘인터넷을 이용해 편하게 해주는 화상진료서비스업 내지 건강상담업’의 의미로 쉽게 연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업체와 국내기업 사이의 상표권 다툼 역시 소비자의 인식이 중요 기준이 되고 있다. 지난달 하순 서울중앙지법은 LG전자가 “중국 가전업체인 하이얼이 무단으로 에어컨에 ‘2 in 1’이라는 표장을 부착해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의 ‘2IN1’ 표장과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며 제기한 상표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양사 모두 에어컨 제품을 지정 상품으로 하고 있고‘2IN1’이나 ‘2 in 1’두 표장 모두 ‘투인원’으로 호칭되고 소비자들도 같은 점을 인식할 수 있는 점에 비춰 동일 내지 유사한 표장“이라고 판시했다. 지난 6월말 일단락된 남양유업과 매일유업간 ‘불가리스‘와 ‘불가리아’상표 다툼에서도 법원은 소비자 혼동을 이유로 남양유업에게 승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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