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 전업인 작가에게 첫 작품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첫 작품은 작가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진로를 결정해 주는 소중한 인연이기에 작가는 평생동안 마음 한 구석에 소중히 담아두게 마련이다.
세종호텔 내 세종갤러리는 김덕용ㆍ김찬일ㆍ박향률ㆍ이석주ㆍ이수동ㆍ지석철ㆍ황주리 등 중견화가 11명의 첫 작품을 최근작과 비교해 전시하는 ‘내 생애 첫 작품을 소개합니다’전을 마련했다.
지석철 홍익대교수는 변형 120호의 대형 화폭에 그린 1972년 작품 ‘투계’를 “기존에 답습했던 구상적 이미지의 틀을 깬 내 생애 첫 추상작품”이라고 소개하면서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치밀한 근래의 작업을 보면서 가끔씩 그 시절의 희망과 도전적열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황주리 씨는 ‘추억제’라는 제목을 붙인 1982년 작품에 대해 “아버지가 출판업을 한 덕분에 집에 수없이 쌓여있던 원고지 위에 그림일기 쓰듯 그린 그림이 이후 내 작품 세계의 원형이 됐다”며 “다시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인기작가가 된 이수동 씨는 아내가 운영하던 어린이 미술실의 이른바 ‘셔터맨’으로 지내던 시절 우울하게 탁자에 엎드려있는 사내를 그린 16년 전의 ‘멜랑꼴리’를 첫 작품으로 삼았다. 대관비는 후불로 하고, 팜플렛도 인맥통해 찬조받는 등 겨우 끼워 맞춘 그의 첫 개인전의 팜플렛 표지에 나온 그림이다.
최근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정현숙 대진대학 교수는 링거병에 아크릴 물감을 넣고 매달아 주사방울을 무명 캔버스 위에 떨어뜨리는 과정을 통해 제작한 99년 작 ‘전과 후(Before and After)’를 내놨다. 그는 “1998년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생명, 삶과 죽음의 개념추구가 작업의 근원적인 주제가 됐다”며 “전과 후가 없는 생명의 근원을 담아보려 한 것이 그때부터”라고 말했다.
전시에는 작가별로 첫 그림과 근작 1~2점이 함께 전시된다. 작가들 대부분은 첫 그림은 ‘첫 작품 이상의 의미를 갖는 보물’이라며 판매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8월 15일까지 (02)3705-9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