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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도입후 전자· 화학 등 계열사서 손 떼
최태원 SK㈜ 회장
수펙스협의회 의장직 넘기며 독립경영 강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그룹회장서 변경… 주력기업 이끌며 비오너 회장 허용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지주사와 함께 해운도 직접 맡아 오너 경영 강조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은 1년 전인 지난해 2월 배임 혐의 등 법정공방 및 건강문제로 태광그룹 회장직을 사임했다. 이 전 회장은 현재 그룹 내 공식 직함 없이 대주주 역할만 수행한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그룹을 총괄하는 회장 직함이 없어진 후 태광은 전문 경영인들이 책임을 지고 각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광그룹이 지난 3일 조직개편을 통해 최중재 전 삼성물산 화학사업부장을 태광산업의 새로운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하고 사회공헌본부와 경영지원본부 등 각 사업본부 성과를 해당 본부장이 책임을 지는 총괄책임제를 도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조치다.
태광그룹의 경우처럼 그룹 오너의 직함 변화에 따라 그룹의 문화와 경영체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룹을 대표하는 오너의 직함은 단순히 직위를 벗어나 해당 기업의 경영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오너의 직함과 소속ㆍ직책이 그룹 지배구조 변화는 물론 주력 계열사, 대외활동, 심지어 사내 문화까지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율경영을 강조하는 LG는 구본무 회장 직함에서 알 수 있다. 구 회장은 2003년까지 LG전자와 LG화학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지만 당시 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면서 계열사의 경영에서 모두 손을 뗐다. 현재 구 회장은 ㈜LG 대표이사 회장만 맡고 있다.
반대로 최은영 한진그룹 회장은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최 회장은 2009년 한진해운홀딩스 출범과 함께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지만 여전히 한진해운의 대표이사 회장도 맡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계열사의 경영실적에 함께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경우 STX와 함께 오너 일가가 아니더라도 회장 직함을 허용하는 거의 유일한 그룹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에도 유현교 삼성물산 회장 등 비(非)오너 회장이 있었으며 현재도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이수빈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출장 등 부재시에 대외적으로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 삼성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아닌 임직원들에게 삼성의 회장이라는 직함은 열려 있는 것"이라며 "물론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STX의 경우 오너인 강덕수 회장이 단독으로 회장 직함을 사용했지만 2009년 무역협회장 출신의 이희범 회장을 회장으로 영입했다. 핵심인력에 대해 예우를 갖춘 셈이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이 지난해까지 SK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을 쓰다 올 들어 공식 직함을 SK㈜ 회장으로 바꿨다. 또 다른 직책이었던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도 김창근 부회장에게 넘겼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 내 최고의결기구로 의장이 실질적인 그룹 회장 역할을 한다. SK그룹 관계자는 "각 계열사의 글로벌화 지원, 독립경영 및 자율경영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외부 경영환경에 맞춰 직함이 바뀌기도 한다. 이건희 회장은 1987~1998년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지만 1998년 이후 삼성전자 회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 SK 역시 1998년을 기점으로 기존 사장단 회의였던 선경경영협의회를 수펙스추구협의회로 변경했다. 오너의 직책도 선경경영협의회 회장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바뀌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과다한 부채비율이나 내부 출자 등 한국식 그룹경영의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다수 그룹의 운영 체계가 변했다"며 "경제가 변곡점이었던 만큼 오너들의 직함 변화도 잦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함과 별개로 회장들의 소속사는 각 그룹의 주력 또는 유망 기업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소속이며 최태원 SK㈜회장은 현재 SK㈜와 SK이노베이션ㆍSK하이닉스 세 개 회사에서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주회사인 SK㈜를 제외하면 나머지 두 회사는 SK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육성하는 대표적 계열사다.
다만 대부분의 회장들은 그룹을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소속사 대신 그룹명을 회장 직함 앞에 표기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아시아나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조 회장의 실제 소속은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이며 현 회장은 계열사에서는 특별한 직책을 맡지 않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께 재계에서 그룹의 법적 지위, 실체 등에 대해 살펴보면서 코오롱 등 여러 그룹들이 그룹 회장이라는 표현 대신 소속사의 회장 직함을 쓰게 됐다"며 "현재는 각 사에서 자율적으로 직함을 사용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