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미국 vs 중·러 편가르기

우크라사태·亞 영토분쟁 '경제냉전'으로 비화
러 위안화 결제… 美 친미진영 돈풀기
러 통상중심축 亞로 이동… 美 몰도바·조지아등 지원, 日도 은연중 베트남 돕기
중도 입장 보이는 인도, 새 투자처로 떠오르기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아시아 영토 분쟁으로 고조되는 신냉전 위기가 글로벌 '경제 냉전'으로 비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러시아를 각각의 축으로 글로벌 경제의 '편 가르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러시아의 대형 기업들이 서방의 제재에 대비해 무역대금을 달러화 대신 중국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의 알렉산더 듀코프 석유부문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고객들과 달러화 외의 통화로 결제 통화를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니켈 생산업체인 노릴스크 니켈도 중국 고객들과 위안화 결제 베이스의 장기계약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기업뿐 아니라 러시아 중앙은행도 비자나 마스터카드 등 서방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새 지급결제 시스템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파벨 테플루킨 도이체방크 러시아 지점장은 "지난 수주 동안 러시아 대기업들이 위안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상품을 이용하거나 아시아 지역에 계좌를 개설하는 데 관심을 높여왔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국영은행인 안드레이 코스틴 CEO는 "중국과의 쌍무교역 거래가 늘어나면서 루블화와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의제가 되고 있다"며 "지난달부터 이를 위한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러시아 기업들이 결제통화를 바꾸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 조치로 서방 은행들이 러시아 기업들과의 거래를 대폭 줄이는 가운데 자칫 달러화 시장에서 완전히 차단돼 자금줄이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방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러시아가 외교뿐 아니라 통상의 중심축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가 달러화 체제에 맞서기 위해 중국과 맞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는 가운데 미국은 러시아와 대립하는 우크라이나 외에 옛 소련에 속했던 몰도바와 조지아 등에 돈을 풀어 친미 진영 굳히기에 나섰다. 8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4,800만달러, 나머지 2개국에 1,300만달러 등 총 6,100만달러(약 623억원)의 추가 재정 지원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로써 미국이 올 들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은 1억8,400만달러로 늘어나게 됐다. 지원 자금 사용처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친러 분리주의 움직임을 잠재우기 위한 국가 통합과 유럽으로의 통합작업 지원 등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주목적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든든한 우방인 중국은 영유권 분쟁상대이자 미국·일본과 가깝게 지내는 베트남에 대한 신규 계약 입찰을 전면 중단하도록 국영 기업들에 지시했다.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석유 시추 이후 양국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베트남에 대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9일 국영기업의 한 관리를 인용, 중국 상무부가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중국 업체들에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중국 기업은 113개에 달한다.

반면 동북아에서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일본은 은연중에 베트남 편을 들고 있다. 최근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이달 초 정부개발원조(ODA) 사업 관련 리베이트 혐의로 베트남 정부에 대해 취했던 신규 ODA 중지 조치를 한 달 만인 이달 말 곧바로 해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무성은 철도건설 컨설팅 업체인 일본교통기술(JTC)이 베트남에서 ODA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오간 혐의가 드러나자 지난 2일 베트남 정부에 중지 조치를 통보했으나 베트남 언론들은 정부 고위관료를 인용해 일본이 곧바로 조치를 해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베트남에 대한 이 같은 느슨한 대응은 동남아의 대표적인 친일본 국가이자 중국과 영토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베트남의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주요국의 경제 냉전으로 상대적으로 중도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인도는 곳곳에서 구애를 받고 있다. 이코노믹타임스는 유럽과의 관계가 틀어진 러시아가 인도를 새로운 투자처로 점찍었다며 드리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가 오는 18일 인도·러시아 정부위원회 회의 참석차 인도를 방문해 경제협력 방안을 진전시키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앞서 8일 시 주석 특사로 왕이 외교부장이 인도를 방문, 일찌감치 양국 간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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