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오판…'버냉키의 굴욕' 글로벌증시 패닉 진앙지는 美 경기침체보다 佛 SG 금융사기SG, 선물매도 쏟아내 주가폭락 불러FRB 사건 알지 못하고 전격 금리인하美 30일 금리추가인하 가능성 낮아져 김정곤 기자 mckids@sed.co.kr 프랑스의 31세 트레이더가 저지른 대형 사기사건으로 지난 21일과 22일 아시아ㆍ유럽 증권시장이 패닉에 가깝게 폭락하고 세계경제의 사령탑이라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마저도 기만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프랑스의 나비 한마리가 전세계 금융시장에 폭풍을 일으킨 이른바 '나비효과'를 실증한 케이스였다. 요컨대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기록될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SG)의 선물거래 사건은 이번주 초 한국은 물론 글로벌 증시를 대폭락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이며 벤 버냉키 FRB 의장도 사기사건을 인식하지 못한 채 금리를 덜컥 내렸다는 것. 따라서 버냉키 의장이 인식의 오류를 인정한다면 오는 30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사건은 프랑스 SG의 트레이더 제롬 케르비엘이 이달 초 수십억유로의 은행돈을 끌어들여 유럽 주식선물시장에 투자한 것에서 시작한다. 이 직원은 2,000만유로 이상을 거래할 수 없는 지위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보안시스템을 이용해 다른 거래인의 명의로 한도 이상의 대규모 매수 포지션을 거래했다. 연초부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로 세계 주가가 하락하고 그의 투자도 큰 손실을 냈다. 18일 SG 리스크관리부서는 은행의 어느 구석에선가 불규칙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음을 파악하고 장본인이 케르비엘임을 알아냈다. 일요일인 20일 SG는 곧 중앙은행에 사건의 진상을 보고했지만 프랑스 중앙은행은 사고를 공개하면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해 발표를 하지 말라고 SG에 지시했다. 문제는 SG였다. 21일 시장이 열리자 SG는 아시아와 유럽 증시에서 곧바로 케르비엘이 거래한 250억유로(370억달러)의 유로 주가선물을 거의 '폭탄세일(fire sale)'에 가깝게 매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1일 선물매도물량은 하루 기준으로 세계 최대에 이르렀고 프랑스와 영국ㆍ독일 3개국의 주식시장에서 날아간 시가총액은 그리스와 헝가리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3,500억달러에 이르렀다. 아시아와 유럽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휴일(마틴 루서 킹의 날)에도 불구하고 버냉키 의장은 집무실에 나와 긴급히 지방 총재와 본부 이사를 불러 임시 FOMC를 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버냉키 의장은 프랑스의 한 은행에서 사기사건이 터져 글로벌 시장이 흔들리는 것을 몰랐다. 미국의 인터넷매체 마켓워치닷컴은 수시로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과 정보교환을 하는 FRB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이러니라고 평가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버냉키 의장의 '인식의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시간으로 다음날 오전8시20분 FRB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SG의 사기사건을 미리 알았던 것 같다. FRB는 당초 글로벌 금융쇼크를 수습하기 위해 ECB와 공조체제를 형성해 대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ECB는 끝내 금리인하에 동참하지 않았다. FRB가 금리를 인하한 다음날(23일)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유럽의회에 출석해 "세계증시 폭락은 미국의 문제"라며 인플레이션과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FRB는 금리인하를 단행하고 하루가 지난 23일에야 프랑스 재무부를 통해 SG 사태를 알게 됐다. 미국의 경기침체가 유럽 및 아시아 증시의 동반 급락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생각했던 FRB 관계자들의 판단과는 달랐던 것이다. 1995년 영국 베어링은행을 파산시킨 장본인인 전직 딜러 닉 리슨은 프랑스 SG 사기사건과 관련,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일은 금융시장에서 항상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면서 "이 사건은 금융 시스템과 통제 체제가 지금도 미흡하고 이를 관리하는 사람들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질타했다. 입력시간 : 2008/01/25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