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의 그림, 스크린에서 고독을 말하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혼자만 아는 고독이란 이런 것일 수 있다.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서 느끼는 동질감 같은 것 말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는 대개 등장인물 한 명과 모든 인테리어가 생략된 가구로 구성된 공간이 그려진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초 미국인들의 '혼자 놀기' 버전 그림이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사진·감독 구스타보 도이치)'은 혼자만의 고독과 쓸쓸함을 그 절정에 올려놓는 작품이다. 둘이 보러 갔다 해도 옆에 앉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혼자가 돼 쓸쓸해지고 말 수도 있기 때문이다.'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3장이 세트로 재현됐으며 마치 호퍼의 그림 속 주인공들이 연기하는 듯 연출됐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룹 씨어터'소속의 배우 셜리이며, 그녀가 즐겨 듣는 라디오를 통해 1930~1960년대까지의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벌어지는 경제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맥카시 광풍,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등 사건들이 전해지며 영화의 사건과 배경이 된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셜리가 읽는 에밀리 디킨슨의 책은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생각한다면 흘려버려서는 안 될 무게를 가졌다. 디킨슨은 극단적인 은둔자로 말년에는 거의 집밖을 나가지 않았던 미국의 천재 시인이다. 디킨슨이 혼자가 돼 느낀 감정은 시가 됐고 그가 죽은 후에야 매일매일 쓴 시가 발표됐으며 그의 시에는 제목이 붙여지지 않았다.

또 셜리는 침대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는다. "동굴 속 사람들은 그림자를 통해 이미지만을 보지만 그것은 그들이 아는 유일한 현실이다." 셜리의 고독은 어쩌면 그림자로 보여지는 이미지일 수 있다. 그래서 동굴의 우화 인용은 고독의 본질과 실체를 알지 못해 더욱 고독해 질 수 있음을 은근슬쩍 짚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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