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0일 발표한 「98년 자금순환동향」은 외환위기 이후 왜곡된 자금분배 기능과 활력을 잃은 경제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개인과 기업의 자금 조달이 줄어들고 정부의 자금잉여도 축소된 가운데 금융기관의 자금중개기능도 크게 위축됐다. 금융기관끼리의 자금거래만 활발하게 오고갔을 뿐이다. 이는 금융기관들이 극심한 돈가뭄에서도 기업·개인 대출을 외면하고 수익증권등 금융기관 내부거래에만 열중했기 때문이다.
또 설비투자 감소와 신용경색으로 기업의 금융기관 부채 절대액은 다소 줄었으나 국민총생산 대비 기업부채의 비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기업부채의 경감노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기업 자금조달 격감= 지난해 기업의 금융기관 금융부채 순증분은 28조4,000억원. 전년의 118조원의 4분의 1 수준이며 지난 88년 21조4,000원을 기록한 후 최저기록이다. 설비투자 부진과 신용경색이 겹쳐 기업에 돈이 들어오지 않은 탓이다.
특히 간접금융이 크게 위축됐다. 종금사와 신탁계정 차입, 은행대출이 모조리 감소해 연중 15조원 순상환했다. 해외차입도 수입관련 무역신용도입이 급감으로 전년의 6조6,000억원조달에서 49조7,000억원 순상환으로 반전했다.
다만 회사채와 주식발행 등 직접금융을 통한 조달은 늘어났다. 49조7,000억원으로 전년의 44조1,000억원보다 12.7%증가했다. 특히 회사채발행이 45조9,000억원 순증하며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금융기관의 대출기피로 막혀 버린 자금조달을 회사채발행으로 해결한 것이다.
◇기업부채 비중은 오히려 증가= 특이점은 부채 절대액은 줄었지만 국민총소득(GNI) 대비 기업부채의 비중은 1.8배로 전년의 1.7배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이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국민총소득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이 금융기관 차입을 축소했지만 국민경제라는 파이에서 기업의 몫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경제침체에 빠져 있는 일본의 1.94배보다는 낮지만 미국 0.96배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한은 정정호(鄭政鎬) 경제통계실장은 『경제구조선진화와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부채비율축소가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허리띠 조여맨 가계= 경제주체중 가장 체중을 줄인 부문이다. 개인부문의 98년말 현재 부채잔액은 271조1,000억원. 97년말보다 29조원이나 줄었다. 차입금을 그만큼 순상환했다는 의미다. 가계와 소규모영세기업을 포함하는 개인부뭄의 차입금 순상환은 한국은행이 자금순환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지난 65년 이래 처음이다.
개인의 자금운용도 줄었다. 56조1,000억원으로 전년의 86조3,000억원보다 줄어들었다. 소득감소와 차입금 상환에 따라 저축여력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들은 소득감소보다 더 큰 폭으로 소비를 줄였다. 때문에 자금운용에서 조달조달을 뺀 금액인 자금잉여도 전년의 39조9,000억원보다 배이상 증가한 85조1,000억원에 달했다.
◇금융기관 대출 회피, 재테크에만 열중= 금융기관들이 본래 기능인 자금중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금융부문의 개인·기업·정부에 대한 자금공급은 40조2,000억원으로 전년의 111조1,000억원보다 63.8%나 감소했다. 기업의 돈가뭄에도 아랑곳없이 재테크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금융기관간 거래가 크게 늘어났다. 135조7,000억원으로 전년의 55조1,000억원보다 146.3% 증가했다. 금융기관들은 성업공사 채권, 예금보험기금채권 매입 때문에 금융기관간 거래가 늘어났다고 항변하지만 이는 31조원에 불과하다. 재테크 주종은 투신사 수익증권. 특히 97년 5조원에 불과했던 수익증권투자가 55조7,000억원으로 10배이상 증가했다.
◇전망= 한국은행은 경기가 회복되면 금융중개기능이 원상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점. 정부의 부채비율 축소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용경색이 다소 풀리고 금리가 더 이상 낮아지면 금융기관들의 더 이상 자금시장에서 돈을 운용치 못하고 기업 대출로 나선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대기업에 자금을 집중 운용하던 이전의 행태에서 벗어나 소규모 기업과 우량 개인에 대한 대출을 늘리는 여신정책을 운용해야 국민경제 전체의 자금 순환도 정상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권홍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