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년에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낸다. 올해 초청인사로 방문한 국제급 영화제만 해도 벌써 15개. 세계 대표급 영화제 8~9개를 선별하는 행사에도 어김없이 `김동호`란 이름이 초청리스트에 오른다. 이는 도쿄영화제 홍콩영화제 등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여타 아시아 영화제도 해내지 못한 일.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유수급 영화제들이 대부분 50여년 내외의 오랜 역사를 지녔음을 감안한다면 `8살 영화제`의 행보치곤 거침이 없는 셈이다. 아시아 변방에서 출발, 국제 무대에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을 시사하는 한 단면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장배경=1996년 국내 영화인들의 뜻을 모아 탄생한 부산국제영화제가 2일 부산 남포동과 해운대 일대에서 제8회째 행사를 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처음부터 `아시아`와 `비경쟁`이라는 틈새시장을 겨냥, 국제영화제의 높은 진입 장벽을 넘는데 성공했다. 아시아 영화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리 크지 않던 시절에 이를 소개하는 역할을 자청, 세계 유수급 영화제와 차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비경쟁 영화제를 지향, 우수 경쟁영화제에 진출했던 작품들을 무리 없이 소개하며 관객의 눈길을 모았다. 영화제 방향부터 개최지에 이르기까지, 각국 영화제의 장단점을 철저히 벤치마킹한 점도 시행착오를 줄이는 힘이 됐다. 여기에 영화에 갈급했던 응집된 젊음의 에너지가 더해지며 주최측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이게 된다.
◇아시아 돈줄이 모이는 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의 부상은 메이저 영화사들의 입김이 거센 도쿄 영화제의 쇠락과 극한 대비를 이룬다. 영화제 창설 멤버가 지금까지 일관된 작업을 해오며 투명성과 공정성에 있어 일종의 `크레딧`을 쌓은 것.
3회 영화제부터 PPP(부산 프로젝트 프로모션)를 도입한 점도 위상을 높인 공신이다. PPP는 아시아 감독들이 기획중인 `프로젝트` 단계의 영화 20여편을 발굴, 제작자를 찾아 주는 것. 이를 거쳐 만들어진 영화 다수를 국제급 영화제에 진출시키며 `부산 PPP출신`이라는 프리미엄도 만들어냈다. 또한 내년 베를린영화제에 `프로젝트 마켓`이 신설될 예정이어서 일찍이 PPP에 주목한 부산의 혜안이 더욱 주목받게 됐다.
이밖에 `사스` 여파로 열리지 못한 홍콩 영화제의 프로젝트 5편을 초청, 아시아 `맏형` 다운 위상 굳히기에 들어간다. 8회에 이른 시점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제정하는 등 순차적인 행보로 다수 아시아 영화인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미래=부산국제영화제는 2003년부터 PPP를 `영화 마켓`을 확대,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꾼다. 영화 마켓은 기획 단계 영화 뿐 아니라 완성된 아시아 영화의 해외 판매를 중계하는 자리. 해외마켓으로 잘 알려진 곳은 프랑스 칸 마켓, 미국 AFM(아메리칸 필름 마켓), 이탈리아 MIFED 등인데 상호 경쟁이 치열하기로도 유명하다. MIFED의 성장을 막기 위해 AFM이 봄ㆍ가을로 시즌을 확대한 점이 한 예.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판매 루트 개척에 조심스럽게 나서는 한편 로케이션, 기자재, 후반작업 업체까지 거래하는 `아시아 필름 인더스트리 센터`로 거듭난다. 비경쟁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독특한 색깔을 더욱 굳히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다수 관계자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또한 6개의 전용관을 갖춘 부산영상미디어 센터가 향후 4~5년 내 건립되는 등 영화제 위상에 걸맞은 시설 확충도 이뤄질 예정이다.
<김희원기자 heew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