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5년9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가운데 전세계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화 약세의 미스터리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회복세를 감안할 때 달러화 가치는 강세를 보여야 하는데도 정반대로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월가에서는 달러화 약세에 대해 기대치보다 미지근한 경기회복세, 유로화 자산 매력 부각,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포워드 가이던스(통화정책 선제안내), 투자가들의 실망감 등 4대 요인을 꼽고 있다.
7일(현지시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79.22를 기록하며 여전히 심리적 저항선인 80선을 밑돌았다. 이는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치다. 반면 영국 파운드화는 최근 한 달간 1.3% 상승하며 8일 현재 파운드당 1.6962달러로 지난 2009년 8월 이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도 한 달 동안 0.8% 오르면서 7주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통화 가치 절하를 유도하는 아베노믹스에도 불구하고 일본 엔화조차 지난 한 달 동안 0.18% 상승했다.
올 초 JP모건·UBS 등 대다수 월가 투자은행들의 달러 강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당초 이들은 미국의 경제회복세가 유럽·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보다 탄탄한데다 연준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나선 반면 유럽·일본은 양적완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달러화 강세를 점쳤다.
달러화 가치가 혼란스러운 흐름을 보이면서 월가도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단 월가는 달러 약세의 원인을 주택경기 등 미국 경제의 기대치보다 취약한 회복세에서 찾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자금도 달러화보다 유로화 자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격은 거품 우려가 나올 정도로 오른 반면 유럽은 이제 막 경기회복이 시작되면서 저평가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재정위기 때 14% 수준에서 최근 3% 밑으로 떨어졌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포워드 가이던스가 효과를 발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준이 장기간 제로금리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상 달러화 투자 매력이 떨어진 것이다. 이날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은 2.59%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달러화 매수 기반이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자 투자가들이 '달러 매도'의 핑계를 찾으면서 달러화 약세를 더 부추기고 있다. 가령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될 경우 투자가들은 달러화보다 유로화를 더 찾고 있는 실정이다.
소수의견이지만 중국의 외환보유액 포트폴리오 재편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로빈 브룩스 골드만삭스 전략가는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달러화 약세의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암흑물질"이라며 "중국이 미 국채를 사들이면서 장기물 금리 약세와 달러화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월가에서는 당분간 달러화 약세 지속을 전망하고 있다. 젠스 노드빅 노무라증권 외환전략가는 "달러 약세는 유동성 공급 지속, 주식시장의 자금흡수력 약화, 달러화 캐리트레이드 증가, 투자가들의 리스크 회피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라며 "미국 경제가 더 좋아지고 통화긴축이 더 강화되기 전까지는 투자가들의 달러화 매수 여력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