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턴키공사 입찰담합과 관련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결과가 보도되었다.
대형건설업체 2개사가 서울시 지하철 턴키공사 수주와 관련하여 입찰담합을 해 7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달청에서는 낙찰률이 95%를 초과한 턴키공사를 대상으로 금년 말까지 입찰담합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부패방지위원회에서도 곧 턴키공사 제도개선 방안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처럼 갑자기 턴키공사 입찰제도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사실 턴키공사가 전체 공공공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수준에 불과하다.
입찰제도가 문제되는 것은 턴키공사만이 아니라 나머지 85%의 공사에 적용되는 적격심사나 최저가 낙찰제 적용공사도 마찬가지다.
먼저 전체 공공공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수준에 달했던 최저가 낙찰제부터 보자.
건설업체간 가격경쟁 촉진을 통한 경쟁력 제고와 엄격한 보증심사를 통해 경영상태가 부실한 건설업체의 수주기회를 축소시킴으로써 건설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겠다던 당초의 취지는 온데 간데 없다.
겨우 2건의 입찰에서 낙찰률이 떨어졌다고 급하게 이런 저런 대책을 수립하여 낙찰률 방어에 나서더니, 그 대책의 실효성이 없다고 더 강도 높은 갖가지 낙찰률 방어대책을 수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의 최저가 낙찰제 공사 낙찰률은 지난해보다 더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70%미만의 저가 낙찰자에게 신인도 점수를 누적적으로 감점하는 제도를 도입했다가 일부 건설업체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특정 공사의 낙찰률이 너무 낮아서 부실공사가 우려된다면, 당해공사의 계약을 해주지 말아야 한다. 외국에서는 가격심의를 통하여 당해공사의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입찰한 자는 아예 낙찰대상에서 배제시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낮은 가격에 입찰했더라도 공사 계약은 다 해주고, 그 이후의 모든 공공공사 입찰시 신인도 점수를 누적적으로 감점 시켜 수주를 방해하고 있다.
그 결과 발주자도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된다. 그 이유를 보자. 지난해 발주된 최저가 낙찰제 공사의 약 75%는 신용평가기관에서 A등급을 받고 있는 대형 우량 건설업체들이 수주했다.
턴키공사 수주도 어렵고, 복권당첨식의 적격심사제도 때문에 공공공사 수주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대형 우량건설업체들이 전략적으로 최저가 낙찰제 공사를 수주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PQ신인도 누적감점제로 인하여 이들 대형 우량 건설업체들의 대부분이 이제는 더 이상 최저가 낙찰제 공사를 수주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최저가 낙찰제공사는 누가 수주할 것인가 당연히 그보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건설업체들 몫이 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행보증제도가 제 기능을 해 준다면 경영상태가 부실한 업체의 수주를 방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보증시장 구조나 이행보증제도에서는 그와 같은 기대를 하기 어렵다.
전체 공공공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나 되는 적격심사 대상공사 또한 몇 년 전부터 수많은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적격심사제도에서는 가격경쟁이나 기술경쟁에 의해서 낙찰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제도적으로 결정된 낙찰 하한율에 해당하는 예정가격을 누가 '운좋게'맞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제도에서는 당연히'기업가 정신'실종을 초래하게 된다. 창의성을 발휘하여 기술혁신과 경영합리화를 달성하더라도 공사수주가 '운(運)'따라 좌우된다면, 제 아무리 기업가 정신을 갖춘 경영자라도 공사수주를 위해서는 역술인을 찾게 되고, 명산대천을 헤매면서 기도 드리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방법이 있겠는가? 최저가 낙찰제의 도입 및 단계적인 확대방안도 이같은 적격심사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탈피해 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비록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공공공사 발주규모는 연간 약 4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공공공사의 규모가 방대하기 때문에 공공공사 입찰제도는 국가예산의 효율성을 좌우하게 되고, 건설산업의 발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턴키제도, 최저가 낙찰제도, 적격심사제도를 가릴 것 없이, 현행 입찰제도는 총체적으로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한두건의 사례만 문제점의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언론에 문제점이 보도될 때마다 그 한두건의 문제점에 대한 단편적인 대책만 강구한 결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켜 왔던 것이 최근 몇 년간의 제도개선 경험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또는 '기본으로 돌아가자'의 말이 입찰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적용되었으면 한다. 입찰제도의 '기본'과 '원칙'을 정립하고, 총체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상호<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