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투기적 키코 권유 은행, 30% 배상 책임"

피해기업 "은행에 면죄부" 성토

투기성 짙은 키코(KIKO) 계약을 권유한 은행이 30%의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키코 피해 기업들은 판결 직후 법원이 은행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성토했다. 서울고법 민사14부(이강원 부장판사)는 8일 의료용 기기를 제조하는 세신정밀이 신한은행과 SC은행(SC제일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일부 변경해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신한은행은 계약 회사의 수출 현황과 계약 당시의 경제 상황에 비춰 투기적 목적의 키코 계약을 권유했다"며 "세신정밀에 9억 3,800만여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기존에 맺은 키코 계약의 손실금을 보전하기 위해 세신정밀 스스로 계약을 맺었고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시작된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를 은행도 예상하기 어려웠다"며 은행의 배상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1심과 동일한 비율이다. 법원은 하지만 키코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중소기업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세신정밀이 지난 2007년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SC은행과 맺은 키코 계약은 1심 판단과 동일하게 불완전판매에 해당하지 않아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앞서 1심은 "금융전문가인 은행은 기업의 거래 목적과 경험, 재산 상황 등을 고려해 상품의 특성과 거래에 따르는 위험을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환헤지가 목적인 키코를 오히려 투기적 목적으로 고객에게 권유한 신한은행이 7,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이날 판결 선고 직후 키코 피해 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SC은행 앞에서 은행과 법원, 금융 당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재천 금성제지기계 대표는 "2006년만 해도 보유 현금만 250억원에 달하던 우량기업이 수주액 1억달러에 대한 환헤지를 위해 가입한 키코 때문에 40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며 "상품 가입 당시 은행에서는 분명히 수수료가 없는 환헤지 상품이라고 이야기했으니 이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기"라고 강조했다. 공대위는 "인도와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법원이 키코와 유사한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한 은행을 처벌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키코계약이 사기라고 판단했다"며 "키코 피해 기업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키코 관련 소송은 대법원과 각급 고등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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