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패널의 이번 판정은 반덤핑조치와 관련한 미국의 지나친 자의해석에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이번 한·미 반도체 분쟁 승소는 사실상 우리나라가 외국을 상대로 처음으로 제소한 무역 분쟁에서 승소했다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특히 이번 승소는 해당 품목인 반도체 외에도 미국이 현재 반덤핑규제 중인 다른 12개 품목에 대해서도 반덤핑규제가 크게 완화되는 효과가 있어 장기적으로 대미 수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분쟁의 발단 지난 92년 미국의 마이크론사가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D램을 미국으로 덤핑 수출하고 있다며 미 상무부에 조사를 신청한데서 비롯됐다.
미상무부는 지난 93년 4월 LG반도체와 현대전자에 대해 각각 11.16%, 4.28%의 덤핑 마진율을 적용한 이후 3차례에 걸친 연례재심에서 이들 업체에 대한 덤핑 혐의를 찾아내지 못했음에도 지속적으로 반덤핑규제 움직임을 보이자 한국정부와 업계가 지난해 8월 WTO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반덤핑 관련 규정으로는 3년 연속 덤핑을 하지 않고 향후 재덤핑시 언제든지 조사에 응한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며 조사철회시 앞으로 덤핑 가능성이 없을 것같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세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반덤핑 조치를 철회할 수 있다. 미국은 이중 세번째 조항을 들어 현대전자와 LG반도체에 대한 반덤핑 조치를 철회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앞으로 덤핑이 재발하지 않을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덤핑관세 부과 철회를 거부한 것은 「코에 걸면 코걸이」조항이라며 문제 삼은 것이다.
◇단기효과는 적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미수출활기=이번 WTO 판정으로 D램의 대미 수출이 당장 늘어나는 등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WTO의 판정은 상무부에 대해 반덤핑관련 제도에 문제가 있어 이를 시정하라고 「권고」한 것일 뿐 반덤핑 관세를 철회하라는 등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미국 상무부로 부터 받은 현대와 LG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각각 3.95%와 9.28%)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승소는 미국이 앞으로 외국업체에 대한 반덤핑 규제를 보다 신중히 하도록 유도해 현재 반덤핑 규제를 받고 있는 한국산 제품에 대한 족쇄를 조기에 푸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미국이 반덤핑조치를 마구잡이식으로 전횡을 휘두르는 것에 제동을 건 것이다』고 해석하고 『미국 상무부가 반덤핑 철회조항을 완화할 것으로 보이는 2~3년뒤 부터 대미 수출이 활기를 띨 전망』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또 반덤핑 철회요건을 개정하게 되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반덤핑규제를 받고 있는 철강판재류와 컬러 TV브라운관, 전화교환시스템등 총 13개 품목도 똑같은 효력이 적용돼 덤핑규제가 사실상 크게 완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권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