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전광영씨(56)가 겪은 사연인즉슨 이렇다.미국의 유명 화랑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퍼져있는 유망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뿐만 아니라 판매망도 지구적 규모로 확대해가고 있었다. 주먹구구식으로 화랑을 운영하고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은 이제 원시적인 미술 마케팅이라는 얘기이다.
지난 96년 박영덕 화랑을 통해 시카고 아트페어(미술 견본시장)에 처음 진출한 이래 지난해 11월 독일 쾰른 아트페어에 이르기까지 70만 달러 가량의 작품을 판매한 전광영씨는 우리 화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비교적 두터운 해외 컬렉터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다른 공산품과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 미술의 해외진출 현실에서 볼 때 큰 점수를 줄 수 있는 실적이다. 새천년 2000년을 맞아 홍익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를 했던 전광영씨를 만나 한국미술의 활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요즘 중국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 작가들은 아트페어에 참가해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유수 화랑들이 직접 초대전을 꾸며 그들 미술시장에서 입지를 굳혀가는 단계에 있죠.』
중국 현대미술이 이처럼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동양적 미학으로 재해석된 서구적 현대미술이 큰 설득력을 갖게 된 것에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중국 작가들을 갖고 한 몫 보려는 서구 화상들의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것처럼 화랑들의 정보사냥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장이 협소하고 이에따라 화랑 역시 매우 영세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저 소수의 잘나가는 작가에 의존해 몇년 동안 장사를 하는 식이지요. 그런 탓에 정보사냥에 게을렀고, 여기에는 평론가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조금은 게면쩍은 일이지만 전광영씨가 지난해 가을 박여숙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질 때 전시장을 찾아온 평론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국내 화단에 기반이 없던 전광영씨가 수년간 해외 아트페어에서 좋은 실적을 올렸다는 사실은 국내 평단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 국내 화단의 고질적인 패거리 문화 탓이었다. 이에 대한 전광영씨의 진단은 명쾌했다.
『시장이 영세하다 보니 유명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생활이 안되는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림을 잘 그릴러면 엔돌핀이 나와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박수근이나 이중섭이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국내 화단이 가난하다 보니 작가들은 뭔가 자신을 내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미술시장에서 보다는 집단의식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각종 학연과 지연따위의 쓸데없는 고질병을 만들어낸다는 것. 영세한 시장은 젊은 작가들에게도 엉뚱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전광영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젊은 작가들이 아무 쓸모없이 이력서만 잔뜩 채우는 소모적 전시에 힘을 다 써버리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빨리 튀려는 욕심 탓이지요. 그러나 늦더라도 자기를 찾아 독특한 미학적 세계를 만들어가면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널려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은 아니고 세계에서 말입니다.』
이용웅기자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