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강세 불구 경쟁력 치명적/수입물가 상승 관리에 큰 부담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경제에 환율이라는 복병이 나타나 향후 경제운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원화환율의 가파른 절하와 이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엔화절하로 인해 주력상품의 수출부진, 물가불안, 그리고 대외부채 상환부담의 가중이라는 추가적인 과제를 안게된 것이다.
국제 및 국내금융시장에서의 달러화 강세는 국내 경제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달러화 강세는 원화절하로 이어져 수출시장에서 국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회복시켜 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논리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데 있다. 최근 달러화 강세로 인한 원화절하폭이 엔화절하폭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경기사이클에서 경기호황을 주도한 업종이 주로 수출시장에서 일본제품과 경합관계에 있는 반도체, 자동차, 선박, 철강 등이기 때문에 엔저를 따라잡지 못하는 원저는 결국 주력 수출품의 대일 가격경쟁력 열위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엔저는 내년 상반기이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어서 국내경기의 침체국면을 더욱 심화시킬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들어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28일 장중 최고치 기준으로 6.97%가 절하됐다. 반면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같은 기준으로 계산할 때 9.26%가 절하, 엔화의 절하폭이 원화 절하폭보다 2.29%포인트 컸다. 이는 수출시장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우리 주력수출품이 일본제품에 대해 가격경쟁면에서 밀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기업들이 1달러=90엔선의 경쟁력을 갖춘 상태에서 이같은 엔저의 지속, 심화는 우리 경제회복의 최대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급속한 엔저에 따른 후유증은 벌써 수출전선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선박 수주의 경우 이미 수주액이 급감, 일본업체들에 눈에 띄게 밀리고 있고 자동차, 철강 등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를 근간으로 하는 경상수지 적자의 개선이 난감한 실정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화환율의 급등은 결국 수입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져 강한 물가상승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수입물가는 원화환율이 본격적으로 오른 지난 9월 한달동안에만 1.3% 올랐으며 소비재수입물가의 경우 9월말 현재 지난해말에 비해 6.5%나 올라 9월까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4.7%를 크게 상회했다. 더구나 수입의 가격탄력성이 낮은 수입구조의 경직성으로 인해 수입물가 상승이 수입물량의 감소로 이어지지 못하고 바로 국내제품의 가격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향후 물가관리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원화의 가파른 절하는 대외부채의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이어져 기업과 금융기관의 금융비용을 더 높일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7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총외채는 9백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여기서 대외자산을 뺀 순외채규모는 2백7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올들어 원화의 달러당 절하액 57원을 감안하면 원화절하로 인해 추가되는 외채상환부담액은 1조5천억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김상석>
◎정유·항공·해운업계 등 환차손 “비상”
『수출경쟁력 제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외채상환부담이 가중돼 가뜩이나 어려운 자금운영과 경영전반에 타격이 우려된다.』(A상사 자금당담부장)
『환율상승에 따른 원가부담 요인을 자체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런 상태라면 환차손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L정유 기획담당이사)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나라 돈값이 떨어지자 수입관련업체들을 비롯해 정유, 항공, 해운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결제통화인 달러값의 상승세가 지속돼 연불수입방식으로 3∼6개월전에 수입을 했던 제품을 당장 결제를 하는 과정에서 환차손과 외채부담 증가라는 「이중부담」을 안고 있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환율상승의 직격탄이 가해진 곳은 중소수입업계와 정유, 항공, 해운업계. 기계류 부품을 수입하고 있는 한 중소업체의 관계자는 『올해초 프랑크푸르트박람회에서 수입한 물품이 최근 들어오고 있는데 대금결제가 문제』라면서 『지금으로선 특별한 대책이 없어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도 『올들어 수입한 물량에 대한 대금결제를 지금 하고 있는데 최근 원화가 54원가량 떨어지는 바람에 눈뜨고 손해를 보고 있으며 특히 업계의 증설여파로 수입물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여 5개 정유업체의 환차손은 4천억원가량 될 것』이라고 전하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특별한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부분 10년만기의 연불수입방식으로 선박이나 항공기를 구입해 외채부담이 많은 해운 및 항공업계도 『대당 가격이 워낙 높기때문에 대금결제에 따른 진통을 겪고 있다』고 전하고 이것이 경영수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업계와 반도체업계는 환율상승이 가격경쟁력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업계와 반도체업계는 『올해초 기준환율을 크게 높여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지만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고 채산성악화를 보전하는데 다소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진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