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 코리아 금융영토를 넓혀라] <3> 버릴 수 없는 꿈, IB 육성

예대마진 위주 수익구조 한계… 해외서 성장동력 찾아야
금융중심축 亞이동 불구 손발 묶인 국내銀 한숨만
리먼등 IB 헐값에 사들인 中·日공격 행보와 대조
전문인력 체계적 양성 PEF 규제완화 서둘러야




지난 2008년 9월18일 국회의사당.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민유성 산업은행장을 거세게 추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상태에 있었던 세계적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산업은행이 검토하고 있는 데 대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몰아세웠다. 미련은 남았지만 산업은행은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홀딩스가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ㆍ유럽 사업 부문을 사들였다. 노무라는 리먼 인수에 힘입어 올해 2·4분기(7~9월)에 277억엔의 순익을 기록해 지난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해외 매출이 일본 국내보다 200억엔이나 많은 1,600억엔을 기록하는 사상 유례없는 일도 벌어졌다. 우리 IB산업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 사이 경쟁사들이 쾌재를 부른 것이다. ◇구호에 그친 IB산업 육성=이처럼 최근 1~2년간 금융의 무게중심이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홍콩ㆍ도쿄 등 아시아로 이동하고 글로벌 위기과정에서 싼 가격에 매물로 나온 미국과 유럽의 IB들을 일본의 사무라이 자본과 중국의 왕서방 자본이 싹쓸이할 때 우리 정부와 은행은 허송세월을 보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줄기차게 외쳤던 정부의 '글로벌 IB 육성' 구호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고 말았고 국내 은행의 IB 경쟁력은 오히려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IB 경쟁력이 후퇴한 것은 정부와 금융권이 금융위기 과정에서 살아남기에만 급급한 데다 해외파생상품 투자로 손실을 낸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책임 추궁에 놀라 '복지부동'으로 일관한 탓이 가장 크다. 국내 은행들이 올 상반기 해외점포에서 거둬들인 당기순이익은 총 2,885억원으로 전체 순익의 10%에 불과하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정신이 사라지고 국내에서 예대마진을 챙기려는 '리스크 회피(risk aversion)' 금융 문화가 팽배해진 것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먼 산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일본과 중국 금융사들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며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일본 금융사들은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해 모건스탠리ㆍ메릴린치 등에 투자했고 중국도 모건스탠리ㆍ스탠더드뱅크ㆍ블랙스톤 등에 수십억달러씩 쏟아붓고 있다. 공격적으로 IB 활동을 전개하며 떨어진 과실들을 헐값에 주어 담고 있는 것이다. 이와사와 세이치로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호황기에는 인수합병(M&A)이 지나치게 높은 값에 이뤄져 인수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세계 금융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일본 은행들이 기회를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IB 육성' 실천이 중요하다=이 때문에 우리 정부와 은행들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IB육성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예대마진을 통한 수익구조는 이미 한계상황에 이른 만큼 해외 IB시장 진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블루오션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리먼의 몰락은 IB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인 헤지펀드형 모델이 실패한 것에 불과하다"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IB는 위험하니 피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IB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IB업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국내 금융사의 보조인력 비중은 80%를 넘어선 반면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인력비중은 8%에 불과하다. 이는 금융허브 경쟁국인 싱가포르 51%, 홍콩 43%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IB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민간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중국 공상은행이 골드만삭스에 지분 6%를 매각하면서 공상은행 직원들을 골드만삭스 직원들과 함께 근무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점은 본받을 만하다. 리스크 관리도 선진화해야 한다. 은행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부족하면 레버리지를 적절히 활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과도한 위험부담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해외 네트워크 확충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의 해외증권 발행, 해외기업에 대한 M&A 추진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해외 투자가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해외 네트워크가 불충분해 IB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도 탄력적이어야 한다. IB업무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사모투자펀드(PEF) 활성화로 자본형성을 쉽게 해야 하지만 국내 사모펀드시장은 과다한 규제에 묶여 있어 운신의 폭이 좁은 상태다. 국내 은행이 해외 금융사에 지분참여를 하거나 M&A에 나설 경우 제도적으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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