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10월 19일] 버냉키 의장이 외면한 것

1970년대 달러가치가 폭락할 때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이었던 존 코널리는 달러약세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던 유럽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달러는 우리(미국)의 통화지만 당신들이 풀어야 할 문제다." 당신이 이 말의 행간의 의미를 읽어냈다면 이 발언과 지난 15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벤 버냉키 의장이 보스톤 연준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펼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날 버냉키 의장은 왜 2%가 채 안 되는 미 인플레이션 비율이 너무 낮은 수준인지, FRB가 9.6%에 달하는 미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왜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고수해야 하는지 어떠한 새로운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현 인플레이션 수준은 FRB의 장기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양대권한(dual mandate), 즉 고용촉진과 물가안정 측면에서 봤을 때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미 실업률을 낮추는 것이 FRB의 최대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우리는 버냉키 의장이 말하지 않은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는 데 거의 4,000단어나 할애한 반면 달러가치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FRB의 추가 양적완화 기대감으로 달러가치가 폭락하면서 세계 환율시장에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그는 달러 약세로 상품시장이 고공 행진을 벌이는 것과 금값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현 상황에 대해 서 어떠한 논평도 하지 않았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 속에는 오직 미국 경제 재건에만 몰두하고 미국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달러를 더 찍어내겠다는 의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미국을 제외한 남은 국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알아서 살아가야 하고 다른 나라들의 시장 동향을 주시한 후 자신들의 금융 정책을 조정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한다. 자국 환율 가치가 달러 대비 치솟는다면 그것은 해당 국가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일 뿐 미국과는 아무 상관없다. 이번 발언으로 존 코널리보다 보다 버냉키의 명성이 세계 곳곳에 더 울려 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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