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우 사태가 남긴 교훈

대우그룹 사태로 한동안 나라 안팎이 심한 몸살을 앓았다. 주가가 사상 최악의 폭락을 기록하고, 채권시장에서는 매물 폭주로 채권수익률이 급등했다.다행히 7월25일 정부와 채권단이 발표한 超강수의 안정화 대책에 힘입어 금융시장이 다시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다시 900선을 회복했고, 시중금리도 떨어져 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은 연 9% 가까운 수준으로 하락했다. 구조조정안 발표로 당장 발등에 떨어졌던 불은 끈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결코 방심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왜 이런 사태가 발 생했는지 면밀히 분석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때이다. <부채비율을 0%로> 우선 대우 사태는 유동성 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대우가 유동성 부족에 빠진 것은 일차적으로 부채비율, 그것도 단기 부채의 비율이 너무 높았던 데 있다. 특히 단기자금은 속성상 금융시장의 상황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차입한 기업에 등을 돌릴 수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대우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해당 기업은 일시에 극심한 자금난에 빠져들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다른 재벌 계열사들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대부분 대기업들의 부채가 자기자본의 200%를 넘는 상황에서 만약 금융기관이 대출금 회수라도 나서게 되면 해당 기업은 속수 무책으로 부도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는 기업들은 재무구조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 그동안의 차입경영 관행에서 벗어나 부채비율을 선진국의 우량 기업들처럼 0%에 가깝게 끌어내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재벌 계열사들이 금년 말까지 낮추기로 한 부채비율 200%는 재무구조 개선의 종착역이 아니라 긴 여정 속에 거쳐가는 하나의 역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만기불일치 해소> 만기 불일치 문제도 사태를 악화시킨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대우는 단기로 조달한 자금을 해외 공장의 인수 등과 같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투입한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투자이익이 본격적으로 회수되기 전까지 대우는 자금난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자금시장이 난기류에 휘말리게 되자 대우는 당장 부도 위험을 벗어나기에 급급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차입 기업들이 단기자금은 단기적 용도에, 장기자금은 장기적 용도에 배분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물론 기업들의 수익성을 대폭 개선하여 부채가 늘어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우선 과감한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부실한 사업부문들을 과감히 떨어내야 한다. 부실부문은 다른 부문의 수익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다. 이런 것들을 정리하지 않고선 기업의 수익성 제고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권리행사 기회 확대> 그리고 빚을 동원한 무모한 확장 전략을 기업 내부에서나 외부에서 적절하게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도 있다. 내부적으로는 주주들의 권리와 이사회의 기능을 대폭 강화시켜 지배주주의 경영상태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집중투표제, 대표소송제 등을 확대 실시하여 소액주주들의 권리행사 기회를 적극적으로 넓혀 나가야 한다. 이사회를 대주주가 아니라 전체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해야 한다. 기업 외부적으로도 돈을 대출해 준 금융기관들의 대출심사기능이 강화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또 실질적인 감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도 만들 필요가 있다. 만약 부실한 회계감사를 한 회계사나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중징계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경영투명성과 신뢰를 높여야> 대우의 정확한 부채규모와 구조조정 의지에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금융시장이 또다시 「살인적인 자금회수 경쟁」에 빠질 뻔했다. 불투명한 기업정보가 하나의 진원으로 작용했다. 대우그룹의 사정이 시장에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갖 억측들이 제기되면서 시장참가자들의 공포감은 필요이상으로 부풀려졌던 것이다. 여기에 대우그룹이 그동안 시장에서 신용을 많이 잃었던 점도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작용을 했다. 이는 기업이 평소에 경영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시장 참가자들로부터 신뢰를 쌓아두지 않으면 그 기업이 역경에 처했을 때 침몰속도가 가속화될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정책당국과 채권단이 이번 사태의 초기 단계에서 서로 손발이 맞지 않는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증시와 자금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주가폭락과 금리급등 등으로 국민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우사태는 정책당국과 채권단이 사태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신속하고도 일관성있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사태의 조기수습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일깨워준 셈이다. 현명한 사람은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나 정책당국이 이번 사태로부터 교훈을 얻어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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