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최근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어쩔 수 없이’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새롭게 가입하는 국가들의 경제ㆍ정치 수준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EU 내부에서는 더 이상 신규 회원국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EU 측은 회원국들이 더 늘어날 경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의 원칙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은 EU의 확대 이전에 회원국들간 제도적 합의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EU 회원국들은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이 EU의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기에 향후 가입 승인 과정에서 치열한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EU 확장 피로감’이 확산되면서 EU 헌법 제정안 인준 투표가 부결된 뒤 관련 논의는 진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EU 가입을 희망했던 터키나 우크라이나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다.
EU가 확대를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현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EU 확장 중단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성장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이슬람권 민주화를 촉진하는 기회를 잃게 됐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EU 내부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얘기했던 것처럼 “발칸반도를 넘어선 EU 확대는 당분간 중단돼야 한다”는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EU 확장 피로감은 다른 방향으로도 분출되고 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내년에 EU 가입이 확실시되지만 부정부패, 농산물 검역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집행위로부터 보조금 중단과 항공기 취항 금지 등의 제재 조치가 취해질 방침이다. 만약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EU에 가입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미 가입 자격이 충분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게 이런 특별 조항을 달아두는 동유럽 국가들을 부패의 온상으로 간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EU 회원국들이 많아질수록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EU 회원국들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EU가 확대되는 것은 평화와 안정, 번영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