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 50여명에 가까운 한국·중국의 스탭이 화면에 윤기를 주기 위해 거리에 물을 뿌리고 인력거를 동원하는등 분주하 움직인다. 김응택 촬영감독이 『물을 좀더 뿌려!』 『전당포 앞의 가로등 불빛이 왜 깜박여, 끄던지 바꾸던지 해!』등의 주문을 하면 통역을 맡은 한국 스탭이 중국스탭에 전한다. 한국말과 중국말이 오가는 이곳 촬영장은 어느 영화 촬영장보다 시끄럽고 바쁘다.30여분간 주변정리를 마치자 유영식 감독이 『리허설 한번 해봅시다』한다. 유감독의 「큐」사인이 떨어지자 황색 군복을 입은 순찰군인들, 기모노의 여인 등이 분주히 오가는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온다. 검은 중절모에 코트를 차려입은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담뱃불을 붙여 무는 순간, 유감독이 「뻥」하는 사인을 준다. 왜경사무소 폭발을 가정한 채 우왕좌왕하는 엑스트라들의 움직임이 이어진다.
20년대 상하이에서 활동했던 의열단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아나키스트」(씨네월드 제작)의 첫장면을 찍는 현장이다. 폭파장면을 특수효과없이 찍어본 유영식 감독은 2대의 모니터 앞에 서서 영상을 체크한다.
학습참고서처럼 두꺼운 콘티자료에 그림을 그려가며 촬영시 나타나는 변수와 오차를 꼼꼼히 기록한다. 『실제 폭파가 이뤄지면 좀 다르겠지만 엑스트라들의 움직임이 느리다』는 감독의 지적이 통역을 통해 중국인 조감독에 전달되는 동안, 세르 이 역의 장동건도 모니터상에서 연기를 재차 점검했다. 멀리 깔린 푸른 조명과 점점이 내린 노란 가로등 불빛에 20년대 상하이가 그럴듯하 살아나고 있었다.
국내최초로 100% 중국 현지촬영으로 이뤄지는 영화「아나키스트」의 촬영은 현재 15%정도 진행됐다. 이 영화는 무대가 중국일 뿐아니라 미술감독(鄭長符)을 비롯한 중국 스탭이 대거 참여하고, 소품·의상 등 일체를 상하이필름스튜디오에서 제공받는다. 이를 위해 씨네월드는 상하이필름스튜디오에 8억원의 사용료를 지불했다. 상하이필름스튜디오는 49년 설립된 이래 600편이 넘는 장편영화를 생산한 중국영화의 산실. 스튜디오 본부 벽면을 장식하는 50년 역사의 주역들 사진 가운데는 완령옥(阮玲玉) 등 초창기 중국영화 스타들과 함께 한국인 배우 김염(金焰)의 얼굴도 있었다. 김염은 「상하이의 영화황제」로 불렸던 스타.
90년부터 상하이 시내에서 1시간쯤 거리에 떨어진 처둔(車墩)에 60만평 부지의 새로운 촬영소를 건설중인데, 상하이의 중심가 남경대로를 비롯해 홍등가, 아파트촌, 백화점 등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세트는 중국 5세대 감독의 선두 첸카이커 감독이 직접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20년대 프랑스식 아파트, 거대한 황포탄 부두, 황포강변의 유럽식 건물들이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옛날식 재즈밴드가 연주를 하는 화평반점(和平飯店), 프랑스식 공원묘지, 항주(杭州)의 유명한 동정호에 떠있는 신비의 장원,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소주(蘇州)의 수상·수로 마을등이 속속 들어선다. 상하이필름스튜디오는 이 오픈세트를 위해 1억5,000만위안을 쏟아부었다. 상하이필름스튜디오는 앞으로 세트 설립 외에 테마파크도 조성, 관광객 유치에도 힘쓸 계획이다.
영화 「아나키스트」는 일제치하 약산 김원봉이 베이징에서 조직해 독립을 위한 항일테러를 전개한 의열단, 그중에서도 상하이에 기반을 둔 가상의 소집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스크바대 유학파인 허무주의자 세르 이, 그의 친구이자 황족 출신인 휴머니스트 이근(정준호), 혁명에 목숨을 건 마르크스주의자 한명곤(김상중), 백정의 아들로 가진 자에 생리적인 적개심을 지닌 돌석(이범수), 그리고 일본군에 부모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소년 상구(김인권)등 다섯명이 주인공. 조금씩 성향은 다르지만 일제강점에 맞서 무장투쟁에 몸을 던진 이들 다섯명 무정부주의자의 삶은 막내 상구의 회상을 통해 되살아난다.
상하이필름스튜디오 오픈세트 촬영 외에 아홉굽이를 돌아가는 구곡교 등 상하이 및 인근 도시에서 3개월간의 촬영을 마칠 영화「아나키스트」는 내년 5월에 선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