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필두로 최근 전세계 주요 경제권에서 표면화되고 있는 마이너스 금리 현상은 디플레이션 조짐 등 세계 경제가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징표로 해석되고 있다.
자금을 빌려주는 쪽이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이론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마이너스 금리 추세가 가장 먼저 가시화된 곳은 일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명목 금리 역시 현재 1.0%, 2.0%로 플러스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이들 국가의 실질금리 역시 마이너스권에 접어든 상태다. 각국 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마이너스 금리가 가져올 효과는 시장 메커니즘 왜곡 등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짐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평가다.
◇세계 각국 금리인하 러시…마이너스 금리 이어질 듯=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5일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직후 홍콩도 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홍콩은 달러와 연동된 페그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FRB의 금리인하에 맞춰 동반 금리인하에 나선 것이지만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금리인하 추세에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같은 날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했으며, 폴란드와 체코 중앙은행도 각각 0.25%포인트 금리를 인하했다. 특히 이 달 초 금리를 인하한 유럽중앙은행(ECB)도 추가 금리인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로권의 금리는 ECB가 출범한 이후는 물론 2차 대전 이후 55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각국 중앙 은행들이 이처럼 앞 다퉈 금리인하에 나서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디플레를 막고 경기 회복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지만 금리인하 폭보다 물가 상승률이 큰 경우가 많아 마이너스 금리 추세는 앞으로 전세계적 추세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시장 기능 약화로 정책 겉돌 가능성=일본의 단기 금융시장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발생한 것은 일차적으로 외국 은행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 부양을 위해 과도할 정도로 통화 정책을 완화한 일본은행(BOJ)의 금융정책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실제 일본 은행들은 BOJ로부터 직접 자금을 차입 받음으로써 콜 시장을 이용하지 않고 있으며, 이처럼 콜 시장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외국 은행의 마이너스 금리라는 특수한 거래 비중이 커지게 된 것.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의 금융정책 운영 목표 중 하나인 콜 금리 수준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게 되면 정책 운용에 상당한 제약을 받거나 금융정책 자체가 겉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역시 45년 만에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낮춘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실탄 확보, 즉 추가적인 통화정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저금리ㆍ저주가 가시화될 경우 침체 가중 위험=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은행 예금이나 현금 보유가 오히려 손해가 되는 만큼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서 실질 가치를 보전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미국 자금시장에는 모두 5조 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환 투자 펀드, 저축예금, 양도성 예금(CD) 등에 투자돼 있고, FRB는 이 자금을 좀 더 경제와 밀접한 금융상품으로 이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 바로 금리 인하다. 실제 미국은 지난 2001년 12월 금리를 인하하면서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진입했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FRB의 기준 금리는 2.0%였고, 소비자물가지수는 2.1%였다.
이처럼 저금리는 경기 회복을 위한 유력한 카드가 될 수 있지만 저금리-저주가 딜레마가 형성될 경우 오히려 침체를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돈을 풀어도 실물경제나 주식시장으로 흘러가지 않는 등 경기부양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금융권의 단기 금융상품에 쌓이거나 금과 원유 같은 대체 투자상품에 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구영기자 gy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