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11월26일] 루마니아 유전 폭파


1916년 11월26일, 루마니아 왈라키아 평원에 화염이 치솟았다. 러시아 바쿠 유전을 제외하고는 유럽에서 가장 큰 유전지대에 불이 난 것이다. 화인은 방화. 영국군이 일부러 불을 지르고 저유고를 폭파했다. 유정탑과 배관들도 모두 깨졌다. 중립국 루마니아를 향해 진격하는 독일군에 석유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다. 영국군은 독일군 점령 직전인 12월5일까지 10일 동안 채굴 및 정유시설 70개, 80만톤의 원유와 석유제품을 불태워버렸다. 독일은 시설복구에 전력을 다했지만 전쟁이 끝난 1918년까지 원상복구할 수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파괴됐기 때문이다. 독일의 연료난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무릎을 꿇었다. 영국군 파괴팀의 기술자는 노턴 그리피스 중령과 부하 한 사람뿐이었다. 영국이 중대한 임무에 단 두 명만 보낸 것은 사람이 부족했던 탓도 있었지만 그리피스를 믿었기 때문이다. 작전 당시 35세이던 그리피스 중령은 공병 대위로 참전했던 보어전쟁 직후 전역해 토목회사를 운영하는 한편 의회에 진출해 정치인으로서 명성도 날렸던 인물. 1차 대전이 터지자 중령으로 복귀한 그는 서부전선에서 독일군 진지와 참호 아래를 파고 들어가는 터널을 뚫어 전세를 뒤엎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와인을 마시며 전선을 질주하는 괴팍한 성격 탓에 최전방에서 소환된 뒤 투입된 게 유전파괴작전. 그리피스는 훈장은 물론 기사작위까지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군의 루덴도르프 장군은 ‘패전의 원인인 석유와 물자 부족은 상당 부분 그 사람(그리피스)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영국이 승리한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회의원 신분에도 전쟁터를 택했던 그리피스 같은 사람들의 존재다. 우리는 어떤가. 국방의 의무조차 비켜간 정치인이 태반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