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中企지원 공약의 허실

“대기업 물량을 놓치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와 같은 경쟁업체가 10곳을 넘으니까요. 그들에게 잘못 보이면 하루아침에 거래처가 바뀝니다. 실무 담당자와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회사를 시작한 지 3년째 된 한 중소기업 CEO의 얘기다. 그는 15년 동안 근무하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그 회사의 협력업체로 출발했다. 그의 당면목표는 우선 매출을 늘리면서 기업다운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제 외형은 어느 정도 성장했습니다. 우리의 고민은 사업 다각화입니다. 그래서 기술력을 가진 유럽 기계업체 인수합병을 추진 중입니다. 우리가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자금ㆍ정보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합니다.” 설립 10년 만에 회사를 연매출 1,000억원 규모로 성장시킨 한 기계업종 CEO의 고민이다. 그는 이제 사업 다각화, 신규사업 진출 등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고 싶어한다.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는 강한 중소기업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이다. 지향점이 다른 중소기업들 국내 중소기업은 약 300만개로 추정된다. 대부분 소상공인이지만 제조업체만 해도 전체의 10% 정도인 30만개에 이른다. 이들 기업은 업종, 매출, 순익, 회사유지 연도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각각 목표점이 다르다. 자금을 투자할 곳도, 개척할 시장도, 목표도 다르다. 이제 대통령선거가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대선후보들은 소위 ‘표밭’이라고 불리는 중소기업 관련단체를 여러 차례 방문하고 있다. 중기지원 공약도 ‘약방의 감초’격으로 항상 먼저 나온다. 중소기업 공약 1순위는 바로 돈이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구인난 해소에 2조6,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산업은행을 민영화해 중소기업 지원재원 20조~30조원 조성하겠다고 자신했다. 사실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법인세 완화 ▦상속ㆍ증여세 감면 ▦구인난 해소 ▦대기업과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개선 ▦연구개발비 지원 등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얘기다. 물론 과거 정권뿐 아니라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도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해온 문제들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미흡한 점이 많다. 과거 가장 적극적인 중기정책이었던 김대중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보자. 수십조원을 투입했지만 실제로 이 덕에 성장한 중소기업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코스닥시장의 거품을 만들었고 머니게임으로 수많은 서민들만 피해를 당했다.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실패한 원인으로 대기업에 대한 반발심과 정책 당국자들의 무지를 꼽았다. 효과적 정책 위한 시스템 구축 중기정책의 성공 여부는 내용 자체보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효과적으로 온기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달려 있다. 성장 가능한 업종과 경쟁력을 지닌 기업을 선택하고 이에 대해 효과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이다. 현재 정부의 중소기업 시책은 무려 20개 부처, 1,500개에 달할 정도로 거미줄같이 얽혀 있다. 중기 업무를 전담하는 중소기업청도 산업자원부의 외청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정부가 천문학적 액수를 지원한다 해도 효과가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기업을 염두에 두지 않는 중기정책도 허상에 불과하다. 60%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형태로 경영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대기업들은 자사의 경쟁력이 달린 만큼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경쟁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술력은 있으나 대기업의 과도한 압박으로 경쟁력을 상실하는 업체는 과감한 지원으로 살려야 한다. 좋은 기업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의 중심부에 위치했듯이 이제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을 만드는 것이 우리 경제의 희망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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