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딸 살해누명 옥살이… 26억 배상판결

군사독재 시절 경찰 간부의 딸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한 70대 노인이 국가로부터 26억여원을 배상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박평균 부장판사)는 정원섭(79)씨와 그의 가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6억3,752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1972년 9월27일 춘천시 우두동 논둑에서 춘천경찰소 파출소장의 아홉 살 딸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내무부는 10월10일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면 관계자들을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다급해진 경찰이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피해자가 자주 다녔던 만화가게의 주인 정씨. 그러나 경찰이 정씨의 범행이 확실하다며 내놓은 증거는 가혹행위에 따른 거짓 자백과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15.8㎝ 길이의 하늘색 연필 한 자루뿐이었다. 수사기관은 연필이 정씨 아들의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범행 현장을 최초로 목격한 이모씨는 1심 재판에서 "내가 본 연필은 누런 빛깔이었다"는 증언을 했다. 그러나 이후 이씨는 위증 혐의로 구속됐고 추후 "파란색 연필을 봤다"고 진술을 바꿨다. 당시 아홉 살이었던 정씨의 아들이 "연필은 내 것"이라고 증언했지만 정씨의 부인은 "경찰이 아들 필통을 가져오라 해서 가져다 줬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정씨는 이듬에 11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15년여를 복역한 끝에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출소 후 20년이 훌쩍 지난 2009년에서야 누명을 벗은 정씨와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구금 1년도 안 돼 아버지가 충격으로 사망했고 가족들도 주위의 차가운 시선 탓에 동네를 떠나야 했다"며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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