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을 기울여온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됐다고 해서 내각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것은 어느 총리에게나 정치적 ‘도박’에 해당한다.
거의 반세기 동안 일본 내 다수당의 위치를 고수한 자민당의 총수이자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과감하게도 이 도박에 나머지 정치 인생을 걸었다. 9월11일로 예정된 총선은 사실상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될 전망이다.
일본 중의원 해산과 총선 실시 결정 이후 일본 내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는 다시 상승 중이다. 만약 자민당이 ‘우정국 민영화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당내 ‘반란군’을 제거하고 총선을 통해 재집권한다면 고이즈미 총리는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는 셈이 된다. 개혁을 추진할 여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정치적 반대파를 합법적으로 제거할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인 민주당도 라이벌 정당인 자민당의 분열을 계기로 집권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고이즈미 총리의 도박은 당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본의 민주주의와 정치 시스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50년 동안 야당이 정권을 잡은 시기는 93년 민주당의 9개월 집권이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이즈미 총리의 도박은 본질적인 위협 요소를 그 안에 숨기고 있다. 자민당과 민주당 중 어느 당도 정부를 구성할 만큼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보라. 총선의 승리자는 반개혁파가 될 것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명한 입장을 취하면서 실시하는 개혁적인 프로그램들이 투표 때마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일본 경제의 회복을 이끈 고이즈미 총리는 추가적인 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그저 정치 도박을 통해서 우정국 민영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효과적으로 축출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에 더 나아가 일본의 정치 시스템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그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