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염불과 잿밥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그러나 정치권이 연말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실망스럽다. 한 해를 결산하면서 잘한 것과 못한 것에 대한 뼈아픈 성찰 과정도 없고 다가올 한 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거의 없어 보인다. 정치권이나 정부는 국민들이 희망을 가지도록 지혜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뒤로 한 채 세금폭탄이니, 부동산 실정이니, 공무원연금 문제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무거운 마음의 짐만 실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대선이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쏟아내는 비방이나 선심성 정책의 남발은 잿밥에 눈이 멀어 염불은 멀리하는 것처럼 비친다. 지난 60~80년대는 우리에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너무 가난했고 정치ㆍ안보적 불완전성을 앞세워 권력에 의해 개개인의 인권이 박탈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가 더 행복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희생하더라고 후세대가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고, 하루 15시간씩 일을 해도 국가의 발전이 국민에게 결국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당시 정부는 ‘경제개발5개년계획’ 등으로 발전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 어느 민족보다 근면하고 열정적인 우리가 왜 앞서 달리는 경쟁국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나아갈 길은 지정학적 이점을 십분 발휘해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의 특화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좋은 본보기는 오스트리아ㆍ노르웨이ㆍ핀란드 등이며 이들은 현재 세계 최고의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한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들의 강대국 사이에서 틈새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중간계시장’으로서 거듭나야 한다. 이미 부분적이나마 조선ㆍ전자ㆍ화학 등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간계시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정학적 특성을 살린 장기적 비전을 만든다면 아직도 우리에게는 무한한 희망이 있다. 지금 정치권과 정부가 할 일은 20~30년 앞을 내다보고 우리가 먹고살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염불을 통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잿밥에만 눈이 멀어 있다면 한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현실 지향적 정책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없는 현실은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책은 현실을 반영한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