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연령·국적 불문 인재에 문열어라"한국의 교육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나는 어쩔 수 없다지만 자식들에게는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
서울경제 특별취재팀이 지난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해외 이주ㆍ이민 및 유학박람회장에서 만난 한 30대 직장인들의 말이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30~40대 가장 중 자녀들과 아내를 외국에 보내고 국내에서 홀애비 생활을 하는 '기러기 아빠'들이 부지기수다. 이민ㆍ 유학박람회가 열리는 곳이면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겠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인재강국을 향한 한국호의 앞날이 만만치 않다는 반증이다.
▶ 담을 허무는 중국, 마당을 줄이는 한국
오는 203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을 노리는 중국은 최근 새로운 실험에 들어갔다.
외국국적의 고급관리자, 과학기술관련 전문가, 대형 투자가들에게 중국판 그린카드인 '뤼카'를 발급하기로 한 것. 뤼카를 받으면 중국비자가 면제되는 것은 물론 거류기간의 제한도 사라진다.
그동안 해외인력 유입에 폐쇄적이던 중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인재확보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반면 집안에 있는 인재도 밖으로 내쫓는 양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5월 '지식자원 유출현상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고급인력의 유출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체 이민에서 고급기술인력이 대다수인 취업이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97년 26.3%에서 지난해 52.4%로 급증했다.
두뇌유출의 주된 이유는 자녀교육. 한국식 치열한 입시시스템과 열악한 학습 환경 등 교육부문의 왜곡으로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은 잔뜩 대기하고 있는 반면 들어오려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 '글로벌'엔 담이 없다
90년대 세계 디지털 혁명을 주도한 진원지는 실리콘 밸리.
이 곳의 배후에는 스탠포드, 버클리, MIT, 샌타클라라 등 명문대학과 활기차고 개방적인 연구소들이 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되는 인재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노력을 펼쳐왔다.
높은 수준의 교육 및 연구인력, 여기에 자본과 아이디어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자연스럽게 미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인재들이 모였고 이들의 열정이 지금의 디지털ㆍIT 혁명을 만들어 냈다.
취재팀이 만난 유유진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스 전무(월드와이드서비스부문 CEO)는 미국 본사에서 입사해 한국사업장의 책임을 맡아 입국한 케이스.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신과 관련한 의미심장한 애피소드를 한토막 들려주었다.
"미국에서 학교를 마칠 때쯤 3~4곳의 기업으로부터 취업제의가 들어왔다. 그 가운데는 루슨트테크놀로지스(당시는 AT&T로 통합돼 있었음)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근무지가 멀어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살던 곳 가까이에 있던 지방기업에 입사했다. 그런데 매달 1번꼴로 루슨트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의 내용은 '지금 이런저런 자리가 비어있는데 우리회사에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것.
당시로서는 신개척지인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유 전무는 결국 1년 만에 항복을 선언하고 지금까지 23년간 루슨트맨으로 일하고 있다.
유 전무는 "능력만 있다면 인종, 연령, 성별, 국적 등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며 "기업의 비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어떤 인재를 확보하고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인재들에게 보내는 러브콜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게 하는 사례다.
▶ 열린 사회, 열린 국가
우리는 외부 인재들에 대해 얼마나 열려있을까.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러시아 기술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비중은 고작 1%에 불과해 미국 26.5%, 프랑스 9.3%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한국을 찾는 글로벌 인재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일락말락 한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는 "인재강국, 인재의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시스템을 개혁해 국적불문하고 유망한 인재들을 우선 유치해야 한다.
또 이들이 국내에 정착하기 위한 각종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현재의 폐쇄적인 시스템을 개방적인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통치권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단위의 무한경쟁을 펼치는 21세기가 새삼스럽게 '교육=백년지계'라는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