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상호의존하고 있다.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북한이 혼자 남고 싶으면 그건 자유다. 끼어드는 데 대해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게임의 룰을 정하고 강제할 세계의회는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주도국가인 미국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경제기구를 갖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고 자그마한 룩셈부르크도 그러하다. 주요 국가들은 국내외적으로 전화·컴퓨터·은행·주식거래 등의 수단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97년의 금융위기사태는 과거의 교훈을 연상케 한다. 완전한 자본주의시장일지라도 정부의 개입없이는 잘 해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1929년에서 1933년까지 살벌한 대공황은 세계인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생산은 마비됐으며 도산과 대량실업은 전세계에 걸쳐 발생했다. 가난한 사람이나 중산층은 물론이고 뉴욕·런던·파리·동경·베를린의 부자들마저 고통을 겪었다.
미국은 간신히 빠져 나왔고 정부의 구제조치에 대한 몇가지 교훈을 얻었다. 덕택에 45년부터 97년까지 경기가 부침을 거듭했지만 이는 빅토리아 여왕의 자유방임주의 시절보다는 덜한 편이다.
순식간에 태국은 거품경제를 넘어서 통화폭락으로 도산의 위기를 맞았다. 이 「아시아감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급기야 싱가포르까지 번지고 말았다. 이어 홍콩, 한국 및 일본까지 도미노처럼 넘어지는 상황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아시아위기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로 확산된다는 걸 예감할 수 있다. 아시아 시장이 붕괴하자 그동안 값이 많이 오른 미국의 주가도 곤두박칠쳤고 같은 현상이 러시아·중국·독일·스위스에서도 생겨났다.
지금이 1929년이고 초기자본주의 시대라면 아마도 전세계는 깊은 불황에 빠져들고 이 불황은 1백년쯤 지속될지도 모른다. 현재는 현재다. 몇년전 멕시코가 처참한 경제적 몰락을 겪을 때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조에 나섰다. 돈이 많이 들었고 위험도 높았다. 하지만 성공했다. 그리고 긴축재정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도 멕시코 경제는 결국 살아났다. 미국과 IMF의 대출금은 상환됐거나 내다 팔 수 있는 장기채권으로 전환됐다.
미국은 돈 주머니가 두둑한 거인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지구상 최대 경제국이다. 다소간의 논란은 있었으나 미의회는 지금까지 IMF의 주도하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려는 클린턴 대통령의 계획을 후원해 왔다.
이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흔히 위기를 겪는 국가들은 IMF의 충고를 거절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위기상황에 놓인 국가의 경우에도 일부 정치인은 IMF의 지원조건에 순응하길 거부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IMF의 지원을 받으려면 엄격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한다. 카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를 정당치 않다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재정운영의 원칙을 어겨왔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게 된 국가를 구제하는 데 성공을 거둬온 방식이며 혁명가들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엄연한 현실이다. 수많은 중남미인들이 굶더라도 체 게바라가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이러한 원칙이 극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한국의 예다. 30년동안 한국은 일본의 뒤를 이어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근면과 손재주만으로 영원한 성공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한국정부는 과거 일본정부가 저질렀던 잘못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독재, 정치부패, 생산왜곡, 비합리적인 대출 등에서 한국은 일본의 잘못을 되풀이 했다. 학생데모와 야당의 반대라는 점에선 일본을 능가했다.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소수 재벌이 경제를 독과점하고 관료들이 산업을 비합리적으로 규제하는 문제점에 대해 그동안 경고해 왔다. 개혁의 방향은 이점에서 불을 보듯 명확하다.
한국은 한번 강타당하고 나자 모든게 엉망이 됐다. 외화보유액은 원화를 방어하는 데 헛되이 쓰여지고 말았다. 주가가 폭락하자 증시는 거래가 중단됐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증시가 다시 거래를 시작하는 순간 주가는 더욱 떨어졌던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연설을 하기만 하면 전세계의 신용평가기관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한다.
불필요한 희생을 치르고 난 뒤 한국은 10여년간 이룩한 성장의 절반을 날리게 될 것이다. 한국은 결국 IMF의 지원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이는 어떤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학은 「기분나쁜 과학」이 아니다. 경제학은 현실과학이며 과학의 원리는 아시아에 색다른 선택권을 특별히 부여하지는 않는다.<노벨경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