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러시아에 정치망명 요청

러시아 영사 “스노든 변호사가 공항 영사 사무실 찾아와 제출”
크렘린·이민국은 확인안해…푸틴은 “美에 해 끼치지 않아야 망명수용”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기밀 감시프로그램 등을 폭로한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30)이 러시아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현지 당국자가 1일(현지시간) 밝혔다.

홍콩에 은신하다가 지난달 23일 러시아로 도피한 스노든은 이날 현재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의 환승 구역에 9일째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익명의 러시아 연방이민국 관계자를 인용해 스노든이 러시아에 망명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처음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새라 해리슨이 러시아 측에 신청서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해리슨은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법률자문으로 일하는 인물이며 홍콩에서 러시아까지 스노든과 동행했다.

이어 AP 통신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당직 영사인 킴 셰브첸코가 전화통화에서 “어제 저녁 10시 30분께 영국인 새라 해리슨이 공항 영사 사무실에 와서 스노든의 망명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리아노보스티, 인테르팍스, 이타르타스 통신 등도 셰브첸코 영사를 인용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하지만 크렘린궁은 스노든의 망명 신청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크렘린궁 공보실장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우리는 관련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연방이민국 국장 콘스탄틴 로모다놉스키도 스노든이 러시아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로모다놉스키는 “미국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이날 러시아 외무부 소식통을 인용해 스노든이 러시아 외교관들과 만나 15개 희망국을 지정한 망명 신청서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이는 에콰도르가 (스노든에 발급했던) 정치적 보호에 관한 서류(난민증명서)를 부인하고 난 뒤 스노든이 취한 필사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스노든이 지정한 망명 희망국가가 어떤 나라들인지, 여기에 러시아가 포함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 보안기관 관계자는 이타르타스 통신에 “만일 스노든의 망명 신청서가 들어오면 당연히 절차에 따라 검토할 것”이라며 “그가 여권이나 다른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망명 허가 검토에 방해되지 않으며 증인이 그의 신상 자료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러시아에서 정치 망명을 허용받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며 “이를 위해선 연방이민국뿐 아니라 외무부, 내무부, 대외정보국(FSB) 등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이후 망명 신청서는 대통령 산하 국적 담당 위원회를 거쳐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간다”고 소개했다. 그는 “승인 절차에 몇 개월이 소요될 수 있으며 정치 망명이 허용되지 않을 경우에도 난민으로 러시아에 머물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가스수출국 포럼 정상회의 뒤 한 기자회견에서 스노든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만일 그(스노든)가 이곳(러시아)에 남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미국 파트너들에게 해를 끼치는 데 초점을 맞춘 활동을 중단한다는 한가지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은 그러면서도 “스노든이 스스로 인권보호자이자 인권운동가로 느끼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아마 그런(미국에 해를 끼치는) 활동을 중단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머물 국가를 선택해 그곳으로 떠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푸틴은 “언제 그렇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이날 “푸틴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모두 스노든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지만 아직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두 정상이 각각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와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로버트 뮬러에게 서로 접촉을 유지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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