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공약인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이 22일 국무회의에 상정됐으나 심의가 보류됐다. 여성계와 유림이 대립하고 있는 호주제 폐지 개정안은 지난 15일 청와대 국무회의 때도 상정될 예정이었다가 `폭넓은 의견 수렴`을 위해 상정 자체가 이날로 미뤄지는 등 `재신임 정국`에 따른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고건 총리 주재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민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 1주일 뒤 국무회의에서 다루기로 했다.
정상명 법무차관이 개정안을 보고하자 고건 총리는 “중요한 법안이니 충분한 토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 국무회의때 시간을 갖고 충분히 검토한 후 결정하자”고 심의에서 제외시켰다.
지은희 여성장관은 “차관회의를 통과했으므로 심의했으면 좋겠다”고 밀어붙였지만, 고 총리는 “호주제 폐지시 가족이 상실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논의해봐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영동 국정홍보 처장은 “국무회의에서 심의하면 되는데 예민한 부분이 있으니까...”라며 “그러나 심의 보류는 특별한 사유 때문이라기보다 중요한 법안이라 좀더 논의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처장은 고 총리와 일부 국무위원이 회의 직후 대정부 질문을 위해 국회로 직행해야 하고, 정기국회에 제출해야 할 다른 법안들을 의결해야 하는 등의 일정을 강조하며 거듭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고 `시간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민법 개정안은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호주제가 남녀평등 및 개인 존엄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재혼가정 등 시대변화에 따른 가족 형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가(家)의 개념과 호주제를 폐지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자녀의 성(姓)과 본(本)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모의 협의에 따라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하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청구로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자녀의 성과 본을 바꿀 수 있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한편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복권 발행기관을 기획예산처로 통합하는 내용의 `복권 및 복권기금법 제정안`을 비롯해 운전면허를 처음 받은 날부터 2년 미만인 운전자를 `초보운전자`로 정의하는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등 17개 법안ㆍ대통령령안을 심의ㆍ의결했다.
<김민열기자 my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