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다.선진국들은 돈을 찍어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트리고 수출을 확대해서 경기침체를 벗어나려는 것이다. 흔히 양적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본격적으로 실시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적인 양적완화를 처음 도입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행은 2001년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국채를 매입했다. 선진국들은 신흥국들의 외환시장 개입은 비난하면서 양적완화는 국제무역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당시 벤 버냉키 연준(聯準) 의장은 양적완화가 미국 경기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으며 그 덕택에 세계경제 회복에도 도움이 됐다고 주장한다.
현재 진행되는 환율전쟁은 선진국과 신흥공업국들 간에 공격적인 환율조작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신흥공업국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매입해서 달러 값을 올리면 미국은 양적완화로 채권을 무제한 매입해서 달러약세를 유도한다.
이런 와중에 일본의 공격적인 양적완화는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낮추고 원화 가치를 높임으로써 한국의 대외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있다. 과거 두 차례 원고(高), 엔저(低) 시기 이후 한국이 외환위기(1997년)와 외화 유동성 부족사태(2008년)를 경험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과거 엔저 때마다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대외채무가 급증하는 가운데 외국자본이 대거 유출됐다. 그때마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았다. 특히 최근의 원고 엔저는 일본이 20년 장기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추진하는 공격적인 '아베노믹스'로 한국 경제에 커다란 위협요인이 된다. 더욱이 미국 연준은 조만간 양적완화를 축소할 방침인 반면 일본은 아베노믹스가 성공할 때까지 양적완화를 지속할 것 같다. 앞으로 원화가치는 미 달러화에 대해서 떨어지더라도 엔화에 대해서는 상당기간 고평가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고 엔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
특히 과도한 외국자본 유입으로 원화 강세가 심화되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 단기적으로 원화가치 상승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하고 변동성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 과거 원고 엔저 시기와 같이 대외채무가 급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기외채와 금융기관 외화유동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보유 외환은 지난 10월 말 현재 3,432억달러다. 보유 외환을 더욱 확충하고 통화스와프도 확대함으로써 아베노믹스와 엔저에 대응해야 한다. 보유 외환 확충은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대응해서 원화의 급격한 절상을 억제할 뿐 아니라 보유 외환 확충은 그 자체가 확장적인 통화정책으로 경기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 충분한 보유 외환은 선진국이 출구전략(테이퍼링)으로 돌아설 때 유동성 위기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원화 강세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기업은 원화 강세에 대비해서 근본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 일본은 지속되는 엔고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계속 늘었다. 일본 기업은 장기간의 초(超)엔고를 이겨내면서 소폭의 엔저에도 급부상할 수 있는 체질과 경쟁력을 확보했다.
독일이 현재 다른 유로존 국가들과 달리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것도 기업의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약하면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고 경제도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원화 강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시장 구조조정 등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은 구조조정을 통한 성장전략인데 한일 양국 간의 환율전쟁은 결국 구조조정 경쟁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