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사관계의 사법화 현상이 심각하다. 즉, 노사관계의 주요 이슈들이 노사 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되기보다는 법원 판결에 의해 결판이 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통상임금·휴일근로시간할증·사내하도급 등 현재 노사정이 관심을 가진 가장 중요한 이슈들은 노사정이 모두 손을 놓고 법원의 판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 됐다. 과거에는 노사관계의 주요 이슈들에 대해 정부와 법원의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 테두리 내에서 노사가 협상을 통해 사안을 정리해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노사관계 이슈들에 대한 정부와 법원 입장이 크게 달라지면서 현장의 기업이 정부 지침을 따라 처리하던 관행이 법원에 의해 부정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결국 노사정 모두 주요 사안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법원의 판결만을 기다리다가 법원 판결이 나면 전문가들은 그 결과를 언론을 통해 해설하고 행정부와 사법부는 후속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는 현상이 자주 보인다.
노사 문제 사법화 현상의 한 예가 통상임금 문제이다. 정부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해왔으나, 1990년대 말께부터 정기상여금이 거의 고정급화하는 형상이 벌어지면서 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속한다는 판결을 간헐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문제는 온 나라를 뒤흔드는 사안으로 부상했고 2015년 1월 현대자동차에 대한 대법원판결 등 통상임금 판결이 날 때마다 노사 간 희비가 엇갈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노동 문제의 사법화 현상의 또 다른 사례는 근로시간 문제이다.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간주하지 않아서 휴일근로 16시간을 포함한다면 주당 최대 68시간까지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의 하급심에서는 연장근로한도에 휴일근로시간이 포함하는 것으로 봐 52시간이 최대한도로 판정했다. 이 이슈에 대한 대법원판결이 2015년 나올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노사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문제는 노사관계의 사법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노사 문제는 노사 당사자 간의 대화와 타협이 최선이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의안에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돼 현장사정에 맞고, 창의적인 해법이 나오게 되며 노사당사자의 수용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지든 이기든 승부를 내게 한다는 점에서 노사 간 갈등을 악화시키는 단점이 있다. 한쪽 주장을 일방적으로 반영해 현장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법원판결은 지방법원에서 대법원판결까지 수년이 걸리면서 결말이 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노사관계의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는 결과를 빚기도 한다.
노사 문제 사법화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행정부와 법원의 의견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행정부와 법원의 시각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법원의 판결이 그간 관행을 보완하거나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건이 새로운 규율을 제시하는 상황까지 돼버린 것이다. 법원의 진보화, 이념화 현상이 이러한 현상이 생긴 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는 대안을 낳지 못할 논의일 뿐이다. 행정부는 극심한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도외시하고 아직도 성장 우선의 고도성장시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법원의 진보적인 판결과 충돌을 빚는 것이 아닌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회는 여야 간 정쟁을 그만두고 민생과 노동 분야의 법안을 정치력을 발휘해 여야합의로 조속히 처리해 법원과 행정부 간의 갈등을 입법정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한국 노사관계의 갈등 수준과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노사관계의 사법화 현상은 우리 경제와 노사관계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