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악화일로] '내수·수출침체' 엎친데 '전염병' 덮쳐… 경제회복 골든타임 놓치나

38개월째 불황형 경상흑자·0%대 물가 이어지는데
2009년 신종플루 확산 때처럼 경제 충격 우려
정치권은 정쟁에 빠져 이대로 가다간 '저성장 수렁'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2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해외 관광객 일부가 마스크를 쓰고 발열 검사대를 통과하고 있다. /영종도=이호재기자


경제가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린다. 내수부진·수출침체의 이중고에 저물가 기조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복병까지 엎친 데 덮친 형국이다. 경제는 내풍과 외풍의 전방위 압력에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지만 당정청은 국회법 개정 논란 등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은 물론 저성장의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황형 경상흑자에 깊어지는 디플레이션 그림자=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치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 흑자는 81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7% 늘었다. 지난 2012년 3월부터 38개월 연속 흑자다. 1986년 6월부터 38개월 동안 이어졌던 최장 흑자기간과 같은 기록이다.

그러나 흑자구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내용이 좋지 않다. 수출은 503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2% 줄었지만 수입은 378억2,000만달러로 17.9% 감소했다.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줄어 나타난 불황형 흑자인데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도 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는 미국 달러화의 국내 유입으로 인한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를 촉발한다는 점에서도 부정적이다.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이 5월 두자릿수(10.9%) 줄어든 것도 이 영향이 크다.

저물가 기조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0.5% 올랐다.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째 0%대 상승률이다. 김보경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석유류 하락 효과에 따른 저물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분석했다. 국제유가가 완만하게 상승하면서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근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담뱃값 인상 효과(0.58%포인트)를 제외하면 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으로 디플레이션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내수회복 복병으로 떠오른 전염병=더구나 메르스 사태가 발생해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내수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역대 사례를 봐도 전염병은 언제나 우리 경제 전반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까지는 2009년 신종플루 때와 판박이다. 당시 6월 국내에 첫 감염자가 발생했고 1년간 25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각종 축제가 취소되고 온 국민이 외출을 꺼리면서 민간소비 증감률은 2009년 2·4분기 3.3%(전 분기 대비)에서 3·4분기 1%로 3분의1 토막 났다. 4·4분기는 기저효과 덕분에 1.6%로 반등했지만 2010년 1·4분기 0.7%, 2·4분기 0.4%로 힘없이 무너졌다.

경제에 충격이 커지자 2009년 11월 당시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신종플루가 우리 경제에 상당히 의미 있는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나섰다. 당시 한은은 신종플루로 연간 경제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0.3%포인트 깎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2008년 터진 금융위기로 수출이 휘청이는 가운데 신종플루로 내수까지 흔들리면서 경제성장률은 2009년 3·4분기 2.8%에서 4·4분기 0.4%로 7분의1 토막 났다.

2003년에 발발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은 국내보다는 중국 등에서 대유행해 우리 수출을 주저앉힌 경우다. 2003년 상반기 발생한 사스로 중국에서는 7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4분기 10%대(전년 대비)에서 2·4분기 7%대로 급락했다.

중국의 성장률 하락은 우리 수출에 직격탄이 됐다. 2002년 4·4분기 2.9%였던 우리 수출 증감률(전 분기 대비)은 2003년 1·4분기 0.9%로 3분의1 토막 났다. 경제성장률 역시 0.9%에서 -0.7%로 충격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해 7월 한은은 사스와 이라크전 등을 이유로 종전 4.1%의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로 대폭 하향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염병이 발생하면 사람이 움직이는 관광이나 유통·식품산업이 직접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경기회복을 더디게 하는 것은 물론 사태의 여파에 따라 경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세종=박홍용·김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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