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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린다. 내수부진·수출침체의 이중고에 저물가 기조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복병까지 엎친 데 덮친 형국이다. 경제는 내풍과 외풍의 전방위 압력에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지만 당정청은 국회법 개정 논란 등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은 물론 저성장의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황형 경상흑자에 깊어지는 디플레이션 그림자=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치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 흑자는 81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7% 늘었다. 지난 2012년 3월부터 38개월 연속 흑자다. 1986년 6월부터 38개월 동안 이어졌던 최장 흑자기간과 같은 기록이다.
그러나 흑자구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내용이 좋지 않다. 수출은 503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2% 줄었지만 수입은 378억2,000만달러로 17.9% 감소했다.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줄어 나타난 불황형 흑자인데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도 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는 미국 달러화의 국내 유입으로 인한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를 촉발한다는 점에서도 부정적이다.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이 5월 두자릿수(10.9%) 줄어든 것도 이 영향이 크다.
저물가 기조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0.5% 올랐다.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째 0%대 상승률이다. 김보경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석유류 하락 효과에 따른 저물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분석했다. 국제유가가 완만하게 상승하면서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근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담뱃값 인상 효과(0.58%포인트)를 제외하면 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으로 디플레이션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내수회복 복병으로 떠오른 전염병=더구나 메르스 사태가 발생해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내수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역대 사례를 봐도 전염병은 언제나 우리 경제 전반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까지는 2009년 신종플루 때와 판박이다. 당시 6월 국내에 첫 감염자가 발생했고 1년간 25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각종 축제가 취소되고 온 국민이 외출을 꺼리면서 민간소비 증감률은 2009년 2·4분기 3.3%(전 분기 대비)에서 3·4분기 1%로 3분의1 토막 났다. 4·4분기는 기저효과 덕분에 1.6%로 반등했지만 2010년 1·4분기 0.7%, 2·4분기 0.4%로 힘없이 무너졌다.
경제에 충격이 커지자 2009년 11월 당시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신종플루가 우리 경제에 상당히 의미 있는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나섰다. 당시 한은은 신종플루로 연간 경제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0.3%포인트 깎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2008년 터진 금융위기로 수출이 휘청이는 가운데 신종플루로 내수까지 흔들리면서 경제성장률은 2009년 3·4분기 2.8%에서 4·4분기 0.4%로 7분의1 토막 났다.
2003년에 발발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은 국내보다는 중국 등에서 대유행해 우리 수출을 주저앉힌 경우다. 2003년 상반기 발생한 사스로 중국에서는 7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4분기 10%대(전년 대비)에서 2·4분기 7%대로 급락했다.
중국의 성장률 하락은 우리 수출에 직격탄이 됐다. 2002년 4·4분기 2.9%였던 우리 수출 증감률(전 분기 대비)은 2003년 1·4분기 0.9%로 3분의1 토막 났다. 경제성장률 역시 0.9%에서 -0.7%로 충격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해 7월 한은은 사스와 이라크전 등을 이유로 종전 4.1%의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로 대폭 하향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염병이 발생하면 사람이 움직이는 관광이나 유통·식품산업이 직접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경기회복을 더디게 하는 것은 물론 사태의 여파에 따라 경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세종=박홍용·김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