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투신업의 장래

IMF사태 이후 우리나라 투신시장은 규모면에서 예기치 않게 커졌다.현재 24개 투신운용회사의 운용자산은 197조원 정도이다. 그중에서 개인이 갖고 있는 것은 77조원정도. 지난 6월말현재 개인금융자산 652조원중 투자신탁의 비중은 12%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투신대국이라는 미국도 이 비율이 9.8%정도이며 일본은 2.3%밖에 안된다. 투신을 포함한 우리의 금융자산은 어느 한 부문으로 일단 옮겨갈 경우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잘 빠져나가지 않는 성향이 있다. 들어온 자산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사후관리만 잘 한다면 투신업은 크게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투자신탁 판매사들이 무리하게 점포와 인력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금융자산에서 투신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한다면 이 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려되는 바가 크다. 또다른 문제는 전체 운용자산중 공사채형이 96%나 되고 주식형은 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사채형은 채권금리가 떨어져 다른 금융상품과의 금리차가 줄어들거나 시가평가제가 일반화되어 투신의 저축상품적 성격이 퇴색해지면 대량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가능성의 현실화를 막지 못한다면 투신업계의 존립자체가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좋은 교훈이 된다. 우리도 조만간 은행판매가 시작되지만 일본의 은행들도 12월부터 투신상품을 팔기 시작하면서「투신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놀란 것은 일본 스미또모 은행이 판매하겠다고 밝힌 투신상품중 일본의 운용회사가 운용하는 것은 1개펀드밖에 없고 나머지 19개 펀드는 모두 외국운용회사들의 상품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남의 얘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 운용회사들이 1~2년내에 당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에서의 이같은 현상은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투신업이 생존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바로 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일이다. 물론 운용력이 브랜드이미지를 높여주는 가장 큰 요소이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휘딜리티나 메릴린치가 꼭 일본의 노무라보다 운용을 잘하기 때문에 일본투자가들이 이들 회사 상품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투신사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브랜드이미지를 높일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회사명을 영어식 표기로 바꾸어 보기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두번째 조건은 운용에 관한 노하우의 축적이다. 우리 투신업계는 운용에 관한 기법 축적이 거의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바뀔때마다 그전 것이 모두 무시되어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았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운용회사는 모두 오너회사, 파트너쉽, 도제제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노하우가 제대로 전수되지 않고 컬쳐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계는 어느회사의 계열사에 샐러리맨 펀드매니저들로 모여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UAM은 운용회사의 홀딩 컴퍼니인데 산하에 60개 정도의 다양한 컬쳐를 가진 운용자회사가 있다. 홀딩 컴퍼니는 마케팅, 백오피스 등의 업무만 하고 운용자회사 사람들은 본인들이 오너 또는 파트너라는 생각으로 운용에 전념하고 있다. 사람들도 잘 바꾸지 않는다. 따라서 전통과 노하우가 계승되고 축적된다. 우리의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형태로서 연구대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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