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보고서] "주거래은행제 개선 기업부실 예방을"

현행 주거래은행제도를 폐지하고 다원적인 거래은행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한국은행 조사부 특별연구 3팀 함정호(咸貞鎬) 팀장은 12일 「구조조정 이후 은행·기업간의 새로운 관계」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금융제도를 통한 국가 전체의 신용 공여 총량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지 못할 경우 기업의 과다부채 누적현상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며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촉구했다. 咸팀장은 지난해 「한은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세간의 주목을 받은 후 재정경제부 장관의 초청으로 과천 공무원을 상대로 개혁을 강의했던 한은 내부의 개혁론자. 한은에서도 금융제도에 관한 최고전문가로 꼽힌다. 咸팀장은 보고서를 통해 은행의 기업에 대한 정보생산과 사후감시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 획일적인 주거래은행 제도보다는 기업규모와 신용도에 따른 다원적 은행·기업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요약, 정리한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 우리 나라의 금융제도는 대체로 은행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 은행 중심제도의 특징은 기업에 대한 금융의 지배력이 높다는 점이다. 은행이 기업을 감시·견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정부 주도 은행중심 금융제도와 정부 주도 시장중심제도가 섞여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가 은행의 자금 배분과 내부경영에까지 간여함으로써 빚어진 결과다. ◇금융제도, 어떻게 바꿀까= 금융제도는 한 국가의 경제성장과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외환위기의 밑바닥에는 미비한 금융제도와 제대로 작동치 않은 금융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경제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금융제도도 변화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시스템을 적용하는가에 있다. 미국·영국에서는 자본시장을 중시하는데 반해 독일·일본에서는 은행의 기능을 중시한다. 양자는 서로 보완·발전하고 있다. ★표참조 우리의 경우 자본시장 중심제도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를 구축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전제 조건도 적지 않다. 때문에 장기적으로 시장중심 금융제도를 지향하되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때까지는 은행중심 금융제도가 가지는 일부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은행의 역할을 먼저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은행이 기업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면 사전심사기능과 사후감시기능, 거래기업에 대한 정보축적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은행을 통해 기업에게 돈이 어떻게 배분되고 어디에 쓰이는지 파악할 수 없다면 기업의 과다부채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기업에 대한 은행 영향력의 강화= 은행이 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기업부실화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주거래은행이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등 제한된 범위내에서 기업경영에 직접 참여토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은행은 물론 고객보유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기업에 대한 임원 파견도 고려해야할 사안이다. 은행과 기업의 관계도 단순한 주거래은행 제도에서 벗어나 기업의 규모와 신용도에 따른 다원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다원적 은행·기업 관계 설정은 자금이 일부 우량대기업에만 집중되는 현상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은 시스템이 자리잡으면 우량대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해, 중견·중소기업은 주거래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선진형 자금배분 시스템이 자리잡을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우량대기업, 핵심은행제도 도입= 자기자본이 충실한 우량대기업은 은행에 크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은행관계를 끊기도 어렵다. 설비투자 등에는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에게는 핵심은행제도가 적합하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소수의 핵심은행과 기업이 관계를 맺는 제도다. 핵심은행들은 공동융자를 통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간사 핵심은행은 위험분담가 기업에 대한 감시업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대기업·중견기업-장기결속관계 적용= 신용이 우량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대기업과 중견기업과의 관계는 장기결속형으로 묶어둔다. 이들은 해외차입이나 국내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기업들이다. 은행은 대출제공자인 동시에 주주 자격을 갖게 돼 지원과 감시를 동시에 수행한다. ◇중소기업-관계적은행(RELATIONSHIP BANKING)제 도입= 중소기업은 해외차입, 직접금융시장 자금조달이 거의 불가능해 은행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은행은 신용위험 때문에 이들과 관계를 갖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은행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중소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관계적 관계 개념의 정립과 도입이 필요하다. 관계적 관계란 은행이 대출할 때마다 기업과 거래하는 거래적 관계의 상대되는 개념으로 특정은행과 기업이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거래를 유지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기업이 성장하면 장기결속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은행의 중소기업 발굴과 신용대출의 확대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권홍우 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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