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현실서 펼쳐지는 '운명적 사랑'

영화 '로망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7일 개봉하는 영화 ‘로망스’는 사랑을 얘기한다. 액자 속 그림처럼 단아하게 ‘박제’된 일상을 살아가던 여자와 거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던 남자에 대한. 정통 멜로 영화가 갖춰야 할 모든 미덕을 갖췄지만, 되돌아 보면 뻔한 신파에 갖히는 아쉬움을 보인다. 이혼남에 빚보증까지 져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형사 형준(조재현). 국회의원 남편과 사랑없는 결혼을 해 행복이란 단어를 잊어버린 윤희(김지수). 가슴 속 새겨진 둘의 상처에 텔레파시가 통했을까. 윤희가 웨딩드레스를 맞추던 바로 그날, 둘은 쇼윈도우를 통해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그리고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로망스’에 빠진다. 웬만한 관객이라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윤희의 남편은 거칠게 둘 사이를 갈라 놓는다. 남자는 죽음에 가까운 린치로, 여자는 정신병원으로. 극단까지 흘러가는 화면은 스피커 가득 울리는 탱고 선율과 함께 관객의 감정을 몰고 간다. 슬픈 탱고의 음률처럼 두 주인공은 끝없는 자기 연민과 슬픔에 빠진다. 이들의 사랑은 죽음까지 몰고 간다. 정통 멜로의 공식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로 연기력을 검증한 조재현과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로 연기자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김지수의 캐스팅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여기에 멜로라는, 국내 관객에게 ‘쉽게’ 먹히는 장르까지 버무려 관객의 감정을 저미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길지 않은 시간을 지겹게 하는 건 끝을 모르는 ‘동어반복’이다. “배우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아우라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감독은 말했지만, 길지 않은 시간을 지루하게 만드는 건 끝을 모르는 ‘동어반복’이다. 여기에 비극으로 치닫게 하기 위한 작위적 설정과 아름다운 치장에만 신경쓴 장면, 감정이 격앙될 때마다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탱고 음악은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모두 어디에선가 본 듯한 설정, 캐릭터, 장면이다. 행복하지 않은 불행한 여자와 힘없은 남자가 펼치는 현실성 없는 삼각관계와 필연적인 파국의 구도. 감정을 숨기지 않고 디테일을 살렸다는 정도가 영화가 지닌 미덕이다. 전작 ‘나비’로 개성 강한 영화의 힘을 보여준 문승욱 감독의 본격적인 상업영화 데뷔작이라 말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