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기준)가 시간 외 거래이지만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면서 회복기미를 보이는 국내 경제에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섰다. 유가 80달러는 정부나 민간연구소 모두 국내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임계점으로 봐왔다. 국제유가의 상승은 원ㆍ달러 환율 하락으로 부분적으로 상쇄되고는 있지만 물가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더러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져 '투자위축→생산감소→고용축소→소비위축'이라는 악순환의 모형이 그려질 수도 있다. 특히 현 유가 수준이 고착화할 경우 이르면 연말 무역수지를 적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경고등도 켜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80달러를 넘어서 고착화되는지 여부에 관심을 쏟은 것도 이런 탓이다. 흔히 국제유가가 10% 상승하면 소비는 0.1∼0.2%, 투자는 1.0%, 국내총생산(GDP)은 0.2%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20일 "시간 외이지만 국제유가가 임계점으로 잡고 있는 80달러를 넘어섰는데 앞으로 80달러 이상에서 고착화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유 현물을 선적하고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이 통상 한달 반 정도 걸리는데 유가가 80달러 이상에서 고착화되면 12월 이후의 통계에 잡히는 도입단가가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80달러대의 유가 흐름이 고착화할 경우 12월 무역수지부터 흑자폭이 대폭 줄어들거나 심각하면 적자 전환도 가능하다. 실제 지난 2007년 12월 원유 도입가격이 배럴당 80달러대로 상승하면서 그 달 무역수지는 57개월 만에 적자로 반전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국제유가가 79달러 이상으로 급등한다면 무역수지 악화, 물가상승 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물론 당장에 국제유가 상승에 대해 대책을 내놓거나 할 계획은 없다. 지경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연간 무역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치인 4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따로 수입액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울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가가 오른다는 것은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라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정책 전반의 수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 수입에서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55~65%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원자재 가격 등락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경기전망을 내놓을 때마다 '국제유가의 안정'을 전제조건으로 반드시 내거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정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10년 예산안에서 국제유가 베이스를 배럴당 63달러를 기초로 작성했다. 또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연평균 60달러 내외를 기록하고 하반기 중 가격상승 요인이 가시화되면서 70달러 내외에서 등락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민간에서도 아직은 유가가 상승세로 완전히 전환됐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이 강하다. 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3ㆍ4분기 박스권보다 다소 상승하겠지만 80달러를 넘어서면 조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도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수급보다는 증시나 환율 같은 거시경제 지표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데 이러한 흐름에 따라 가수요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국제유가가 하반기 중 80달러선을 찍는 것은 이미 하반기 경제전망시 감안했던 것"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유가전망은 해당기간에 대한 평균치로 유가는 여전히 예상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