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포화속의 평화

◎정신나간 이스라엘병사의 헤브론시장 총기난사사건이 협상을 두절케하지는 못했다./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전략은 난관에 부딪혔다.수개월간 헤브론이란 이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해결되기어려운 듯한 외교분쟁의 본보기였다. 이스라엘의 완전한 점령하에 있는 마지막 핵심 팔레스타인 도시로서 헤브론의 지위는 양측이 자치 조건에 합의할 경우 지난 3월에 공식적으로 끝날 예정이었다. 지난주 양측의 합의가 성사될듯한 찰라에 헤브론은 유혈과 파괴로 점철된 장소임을 또다시 드러냈다. 노암 프리드만(22)은 정신착란 병력과 아랍인 살해위협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에 입대, M16소총으로 무장한 군복입은 병사가 됐다. 1월1일 그는 총을 사용키위해 헤르론의 실외 야채시장앞에서 무릎을 꿇고 15m 이내의 상인들과 쇼핑객들에게 발포를 했다. 수초내에 민첩한 아비 부스킬라 육군대위가 그를 덮쳐 다른 2명의 병사와 함께 그의 소총을 빼앗고 그를 비틀어 잡았다. 부스킬라 대위의 재빠른 행동과 프리드만의 서툰 사격 덕분에 피해는 크지 않았다. 프리드만은 20발을 쏘았으나 6명이 부상을 당했을뿐 사망자는 없었다. 이 사건은 지난 94년 유대광신도에 의한 회교예배자 29명 학살사건을 시민들에게 상기시켜 이 도시의 예민한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했다. 이 사건은 또 헤브론문제의 어려운 이유를 잘 보여줬다. 유대인과 회교도들은 두 종교 공통의 중심인 아브라함 및 그의 가족의 무덤이 있기 때문에 모두 이 도시를 신성시하고있다. 이런 장소적인 배경으로 인해 대부분이 종교적 과격론자들인 4백명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헤브론의 10만명 회교도속에서 독자성을 유지하며 살고있다. 유대인 헤브론시민들에 대한 1929년의 조직적인 살해를 기억하고있는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자치로 인해 그들이 살육을 당할 것이라고 우려하고있다. 예루살렘 부근 정착민 출신 정통유대교인인 프리드만은 이스라엘의 모든 형태의 헤브론 철수를 막기위해 일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는 체포된후 기자들에게 팔을 치켜들고 승리의 미소를 지으면서 민족주의자들의 노래인 「헤브론은 항상 영원하다」를 반복해서 불렀다. 그의 미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프리드만의 분노가 폭발한 바로 그날 협상대표들은 베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의장이 헤브론의 자치협정안을 최종 손질할 것으로 예상하고있었다.발포사건후 일정은 연기됐다. 그러나 협상을 중재한 미관리들은 여전히 합의도출은 시간문제라고 말하고있다. 아라파트와 전임 이스라엘총리는 지난 95년 9월에 이같은 합의에 이미 서명했었다. 그러나 네탄야냐후는 지난해 5월 총선후 헤브론지역 유대인에 대한 더 좋은 안전보장 확보를 위해 협상을 다시하겠다고 주장했다. 그후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미관리들은 네탄야후가 시간을 끌고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소규모 전쟁이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의 염원을 계속 좌절시키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못하는 대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동시에 10월 돌출사건에 따른 팔레스타인 주민과 외국의 지원에 고무된 아라파트는 강경자세로 돌변, 협상대표들에게 헤브론문제에 관해 양보치말것을 지시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측은 상당한 양보를 얻어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긴급한 안보상황시 헤브론에 다시 진주할 수 있는 명시적인 권리 부여 요구를 철회한 점이다. 대신 양측이 모두 편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보다 애매한 형식선에서 해결됐다. 이스라엘의 타협으로 인해 협상은 수주전에 타결될 수도 있었다고 미관리들은 말한다. 한 고위 미국무부 고위관리는 『우리들은 합의도출을 위한 압력을 높여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아라파트가 시간끌기를 했다. 그는 헤브론문제에 합의할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을 제거하고 네탄야후로 하며금 웨스트뱅크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가속화시키며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약 이행을 늦추게 할 것으로 우려, 지시해제를 보류했다. 네탄야후는 지난달 13일 전정권이 취소한 정착촌에 대한 거액의 공공보조금 지급을 재개, 정착촌들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우려를 고조시켰다. 이스라엘이 역대 미국 대통령중 가장 이해심이 많다고 생각했던 빌 클린턴은 이 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다. 클린턴은 처음으로 유대인 정착촌을 「평화에 대한 방해물」이라고 규정하면서 레이건과 부시 시절의 용어를 사용했다. 한 고위 국무부 관리는 『네탄야후에게 그것은 정신을 바짝차리게 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협상이 결렬되거나 테러가 다시 발생할 것에 대비, 클린턴은 헤브론 협상이 완결되도록 데니스 로스 국무부 중동특사를 예루살렘에 급파했다. 로스는 또한 아라파트의 강경정책을 누그러뜨리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협상관계자는 『아라파트는 협상결과에 따라 그와 미국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언질을 받고 움찔했다. 그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약해지면서 그는 헤브론협상에서 그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로스는 그가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말에도 팔레스타인측은 웨스트 뱅크지역의 이스라엘인들이 올 9월이나 늦으면 다음 1월까지 정해진 날짜에 3단계에 걸쳐 철수한다는 서면 보장 각서를 이스라엘측에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첫번째 철수 날짜만 정하고 나머지 두개의 철수시기는 협상카드로 이용할 속셈이었다. 협상 관계자는 『아라파트는 마지막에 가짜 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주 쓰는 협상 전술이다. 총격사건으로 그는 구실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건 아니다』고 말한다. 분명히 팔레스타인측은 총격사건을 이용해 좀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고 싶었다. 협상의 초점은 대부분 정착민들의 안전에 맞추어졌지만 프리드만은 헤브론의 아랍인들도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팔레스타인 자치하에서도 유대인 정착촌뿐 아니라 총기사건이 발생한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배타적으로 통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측은 네탄야후가 헤브론 협정을 그의 우파 내각에서 통과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재거론하지 않았다. 18명의 이스라엘 각료중 7명이 결단코 헤브론협정에 반대할 뜻을 밝힘에 따라 네탄야후가 협정을 통과시키는데 필요한 과반수를 가까스로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지난주의 불행한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측을 서로 좀 더 가깝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네탄야후는 재빨리 아라파트에게 전화를 걸어 프리드만의 행위를 강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희생자들의 빠른 회복을 빌었다. 아라파트는 감정적인 말을 피하면서 총격사건을 평화협상을 파괴하는 범죄적 행위로 규정했다. 헤브론에서 이스라엘군은 이미 자리를 잡고 군복을 입지않고 조용히 활동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군들과 긴밀히 협조했다. 총격사건 직후 헤브론의 청년들이 시위를 시작하자 아라파트의 헌병들은 즉각 그들을 설득해 시위를 중지시켰다. 한 장교는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철수를 연기할 어떤 구실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리의 시민들에게 프리드만 사건은 헤브론내의 두 공동체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이스라엘내 어느 지역보다 쌍방간의 증오심이 높은 것이다. 프리드만의 총격에 다리를 다친 쌍둥이 아크람과 아브델 카림 아트라시(16)의 어머니는 쌍둥이가 입원한 병실에서 『정착민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헤브론의 유대인들은 이번 사건에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랍인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보다 더한 기념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지난 94년 회교사원 학살을 자행했던 바루시 골드스테인을 기리기 위해 유대인들이 헤브론 밖에 세운 성소다.<예루살렘=리사 베이어 기자/워싱턴 딘 피셔/헤브론 자밀 하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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