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 포커스] 제자리 걸음하는 농협 신경분리

무리한 사업구조 개편 탓 2000억 미납


국내 모든 금융회사들은 공통적으로 부담하는 의무가 한 가지 있다. 예금보험공사에 예금의 일정액을 예금보험료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가 예기치 않은 부실로 문을 닫으면 예보는 이 보험료를 재원으로 예금자에게 예금을 대신 지급해준다. 지난해와 올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은 20곳의 저축은행 예금자에게 예보가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예금을 대신 지급해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예금보험제도 덕분이다.

그런데 이 예금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금융회사가 있다. 지난 3월 초 단행된 사업구조 개편을 계기로 농협중앙회 내 공제사업에서 정식 보험회사로 전환한 농협보험(생명보험+손해보험)이다.

◇사업구조 개편 4개월 지났는데…예보료 미납=7일 예보에 따르면 이들 두 회사의 예금보호 대상 예금(부보예금) 규모는 35조8,000억원(생보 34조1,000억원, 손보 1조7,000억원)가량이다. 보험사는 변액보험 등 일부 상품을 제외하고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의 일정부분을 예보에 예금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

농협은 이 부보예금에 대해 약 2,000억원가량의 예금보험료를 예보에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구조 개편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농협은 이 예금보험료를 한 푼도 납부하지 않고 있다.

농협은 우선 2,000억원 가운데 1,400억원은 자체적으로 적립해온 상호기금에서 출연할 예정이다. 농협보험은 사업구조 개편 이전까지 공제사업 형태로 운영돼왔는데 공제사업 역시 만일의 부실사태에 대비해 예금의 일정액을 상호기금에 적립해왔다.

그런데 이 돈의 납부시기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상호기금을 예보로 넘기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는데다 상호기금에 대한 실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농협구조개선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만들고 상호기금에 대한 실사도 이른 시일 안에 마친다는 방침이다. 나머지 약 600억원은 향후 5년간 분납하기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농협보험이 예금보험료를 다른 보험사들과 같은 수준으로 완납하려면 오는 2017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예보와 농협은 "예금보험료 납부 시기가 늦춰진다고 해서 예금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만에 하나 농협보험이 부실화된다고 해도 다른 보험사들이 납부한 예금보험료로 예금을 대지급하면 되기 때문이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농협 사업구조 개편=농협의 예금보험료 미납은 사업구조 개편을 설익은 상태에서 성급히 추진한 데 따른 부작용의 하나라는 지적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농협 사업구조 개편을 공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개편시기를 2017년에서 5년 앞당겼고 이로 인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집단 지정을 둘러싼 공정거래위원회와 농협 간의 갈등도 이와 유사한 '준비부족' 사례로 지목된다.

농협금융지주의 자본금 확충을 위한 현물출자(1조원어치)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 정부는 산은금융지주 주식을 농협금융지주에 출자하기 위해 산은의 '해외발행 채권에 대한 보증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야당은 "산은지주의 기업공개(IPO)를 강행하기 위한 꼼수"라며 동의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보증동의안 처리는 현물출자뿐 아니라 산은지주의 IPO를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외관상으로는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이 끝났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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